“자신이 선택한 만큼의 일을, 자신이 선택한 시간만큼만 한다. 한 장소에서 일하는 대신, 모든 장소에서 일한다. 한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회사를 위해 일한다. 부당한 지시를 하는 회사와는 바로 인연을 끊을 것이다. 일과 삶을 유연하게 배합한 하루를, 일주일을 보낼 것이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때 4대(大)보험과 노동3권을 누리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라고 그는 강조했다. 또 “평생 한 직장에서 도제식으로 훈련받으며 능력을 익힌 선배 세대와 달리 떠돌아다니며 이 일 저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역량과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청년들"이라고 규정했다.
 
이원재 대표는 지난 6월 5일 국가미래전략을 연구하는 공익법인 싱크탱크 '여시재' 홈페이지에 '왜 정규직 노동자의 出産만 보호받고 자영업자의 出産은 보호받지 못하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같은 현상을 ‘현재 對 미래의 충돌’로 설정하고 “20세기 제도로는 더 이상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4대 보험은 20세기 ‘공장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20세기 자본주의는 공장으로 노동자를 모으기 위해 정규고용 중심의 사회정책을 도입했다. 노동자를 위한 보호장치를 만들면서 정당성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노동자'만'의 권리를 인정(노동3권)한 것과 노동자'만'을 위한 복지(4대보험)를 만든 것이 핵심이다."
 
이 대표는 새로운 가치의 원천이 ‘공장’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를 공장에 모이게 하고, 그들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이윤을 높이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공장에 모여든 노동자라면 단결해 파업할 수 있게 되었다. 대공장의 기계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고, 노동자는 기계 주변에 모여 일해야 했기 때문에, 파업은 위협적인 권리행사 수단이었다. 기계를 멈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멈추는 순간 가치 생산이 멈추는 시스템이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정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노후위험과 건강위험과 실업위험으로부터 보호받도록 기업과 국가가 책임을 졌다. 이른바 ‘4대 보험’이라 불리는 사회보험 체제라는 것이다. 그들을 공장에 묶어두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사회보험은 특이하게도, 정규 노동자의 가족까지 보호해줬다. 직접적으로 기계를 돌리지 않는 노인과 어린이와 배우자들에게도 건강을 보장해줬다. 이 대표는 “사회보험이 노동자 개인의 위험을 나눠 갖기 위한 제도를 넘어서서 사회 전체를 포괄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조처는, 노동자들을 공장에 묶어두고 기계를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20세기의 정규 고용 중심 복지국가가 들어섰고 자본 쪽에서 이윤을 독점적으로 가져가는 대신, 사업상의 위험도 먼저 가져가도록 틀을 짰다. 노동자들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 위험까지도 줄여주는 제도를 얻어냈다. '자본가가 이윤을 차지하되, 자본가가 노동자를, 노동자가 노동자 아닌 이를 돌보도록' 설계한 게 4대 보험과 노동권 중심의 사회정책이었다는 것이다.
 
단순화하면 '자본가와 노동자'가 '노동자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먼저 차지하도록 설계한 게 20세기 자본주의·복지국가 체제였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보호받는 정규 노동이 공장의 기계를 둘러싼 채 고속성장의 스크럼을 짰다"며 “유럽은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20세기 빠른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함께 이뤘고 정규 고용 중심의 사회정책은 이런 시대의 유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의 작동방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가치가 나오는 장소는 더 이상 노동자들이 둘러싼 공장의 기계가 아니다. 모두의 집이고, 지역이고, 가상의 인터넷 공간이다. 사람들은 모든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소비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가 빅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 대표는 ‘우버’를 예로 들었다. 2019년 5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우버는 상장시 시가총액이 83조원 규모였다. 현대자동차 당시 시가총액의 3배 규모다. 우버는 지금까지 300만명의 운전기사를 가입시키면서, 그들의 운행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 우버가 보유한 그런 데이터의 가치에다, 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노하우까지 겹쳐지면서 미래 운송서비스를 주도할 가능성이 덧붙여져 대규모 투자를 받은 셈이다.
 
이 대표는 “데이터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이윤의 원천"이라며 “데이터가 21세기의 석유"라고 강조했다. 앱을 통해 차를 부르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나 플랫폼의 주문을 받아 일하는 운전기사나 배달원이나, 결국 데이터를 채굴하던 광산 노동자 같은 역할을 한다. 플랫폼기업들이 금융시장에서 높은 미래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21세기의 광산에서 채굴권을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자본은 더 이상 노동자를 공장으로 불러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며 “자본 쪽에서도 노동 쪽에서도 변화의 동기는 커졌다"고 했다. 예를 들어 기업에, 공장에 매이지 않은, 매이고 싶지 않은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일보다 삶을 중시하는 파트타이머들, 통제받지 않고 일하고 싶어 하는 지식노동 프리랜서들, 한 기업에만 속하는 것을 거부하는 N잡러들, 자신이 하던 무급노동의 가치를 찾고 싶어 하는 전업주부들, 시장에서 완전히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 사회활동가들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20세기에 만들어 둔 사회제도로는 이런 변화를 적절히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해법은 두 갈래"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 전통적 해법은 ‘고용주 찾기’ 또는 일자리 만들기다. 20세기에 국가와 협력해 정규 고용 보호를 지원했던 자본을 끌어들여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든 그 고용주를 찾아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흐름은 이 해법을 투사하고 있다. ‘우버가 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주장에도 이 해법이 투사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점점 이윤을 얻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앱을 통해 들어온 음식주문을 음식점 주인이 받아 동네 배달업체에 전달하고, 그 주문을 받아 배달을 하는 기사가 있다고 치자. 이 배달기사의 고용주는 누구인가. 누가 이 사람의 노후와 건강과 실업 위험을 책임져야 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 기업이 대규모 공장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부리며 생산하던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싸움은 계속 이어지는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노동자들은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하기 이전에도 고용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던 이들이다. 디자이너도 배달기사도 원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었다. 그들의 고용주 찾기는 수십년간 진행됐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자본도 노동도 적극적이지 않은 해법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두 번째의 전통적 해법은 ‘자격 제한’이다. 고용주를 찾아주는 대신, 이런 노동자들을 사업자로 간주하고 진입장벽을 높게 쳐서 경쟁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준다. 이들에게는 작은 독점 이익이 생긴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이른바 지대(rent)이다. 그 지대를 근거로 살아가도록 해준다. 노동자는 삶을 보장해주는 기업은 없지만 대신 경쟁이 덜한 곳에서 사업자로 살아갈 권리가 생겼다고 느낀다.
 
개인택시에서 변호사까지, 이발소에서 어린이집까지 사례는 많다. 개인택시의 경우를 보자. 손님이 줄면 바로 그날 수입이 줄어든다. 회사택시 역시 사납금제도를 통해 경영성과가 바로 노동자 보상에 반영되는 시스템에 들어가 있다. 자본의 위험을 오롯이 노동이 받아온 모양새다. 개인택시 기사라면 4대 보험도 퇴직금도 본인 부담이다.
 
그런데 기업에 고용된 운전기사는 회사 수입이 줄어도 임금이 변하지 않는다. 회사가 파산을 선언하거나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해야만 타격을 받는다. 4대 보험료 상당부분을 회사가 내준다. 퇴직금도 보장된다.
 
국가는 그 대신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운전기사들을 위해 사업면허제도를 운영하고 자격을 제한해 택시기사들의 수입을 지켜준다. 물론 그럼에도 시장이 변동하면 그 위험은 오롯이 기사들의 몫이다. 고용주를 찾아주는 것과, 보호 없이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 사이의 중간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이 크게 변화하지 않고 유지될 때, 그리고 독립 사업자가 주변의 일부일 때는 이런 해법도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이 격랑에 휘말리면 이 구조는 지탱하기 어렵다.
 
게다가 ‘자격 제한’ 솔루션은 폐쇄성 문제도 안고 있다. 다른 사업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국가가 ‘파워포인트 디자인 면허’를 발급하고 무면허 디자인을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 배달기사 자격증을 주고 수량을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에게도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이 대표는 “전통적 해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며 “공은 다시 국가로 돌아간다"고 했다. 새로운 지향점을 국가가 기획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생산자들, 즉 흩어져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업이 평화롭게 만나도록 설계도를 내놓아야 한다"며 “그 핵심은 ‘정규고용’의 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사회정책을 기획하는 일"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노동은 왜 노동이 아닌가. 배달기사의 노동은 왜 보호받지 못하는가. 자영업자의 출산은 왜 국가가 보호하는 출산이 아니어야 하는가. N잡러의 사회보험은 왜 본인이 고민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버 기사와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에서 나오는 이익은 왜 모두 우버가 가져가야 하는가."
 
이 대표는 “두 가지 굵직한 제안이 나와 있다"며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완전고용제도"라고 했다.
 
기본소득제도는 《21세기 기본소득》의 저자 반 파레이스가 제안한 것이다. 국가가 모든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현금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이런 방식을 통해 전업주부든, 아르바이트든, 프리랜서든, 잠시 쉬는 사람이든 생계 고통을 최소화하고 자유롭게 노동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한편 국가가 보장하는 완전고용제도는 토마 피케티의 멘토인 앤서니 앳킨슨이 《불평등을 넘어》에서 제안한 것이다. 국가가 ‘최후 고용주’ 역할을 하면서 누구든 국가에게 고용을 요구하면 의무적으로 고용해주는 제도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정규 노동자가 받는 것 같은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 대표는 “두 가지 제안 모두 토론해볼 여지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취업과 미취업 사이에 깊게 패인 지금의 경계선은 허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그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고문 마무리 부분에서 “결국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소득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보장을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해주는 것이 미래 노동의 핵심"이라며 “20세기 국가가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동시에 이룬 시스템을 만들어 냈듯 21세기 국가도 그런 역할을 하려면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문제제기는 좋았는데 방법론에서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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