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월 20일 ‘대(對)중국전략보고서’를 공개한 가운데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미중(美中) 신냉전의 ‘공식 선포(formal announcement)’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는 지난 5월 27일 발간된 세종연구소 ‘세종논평 9호’에서 “미중간 갈등은 쉽게 해소 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인권문제 등으로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미중 신냉전은 한국에게 있어 지정학적 암흑시대의 도래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센터장은 “가장 주목할 부분은 ‘우리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이는 미중 갈등의 성격이 ‘가치 갈등’이라는 것을 적시한 것"이라며 “시진핑 주석을 평소처럼 ‘President Xi’라고 하지 않고 ‘General Secretary Xi’ 즉 ‘공산당 총서기’ 호칭으로 부른 것도 미국내 중국전문가그룹이 제기한 호칭관련 문제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공산국가임을 표시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이란 주어가 들어갈 자리에 ‘regime’ (정권)이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이 ‘북한’과 같은 나라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이 겉으로는 개방된 글로벌 무역체제를 주창하면서도 물밑에서는 오랫동안 서방과 이데올로기 경쟁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본다"며 “트럼프는 2017년 11월 중국 방문 시 인권문제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중국에 가서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첫 미국대통령’이라 비판받았는데 본 문건는 신장, 홍콩 등을 언급하며 중국의 인권문제, 소수민족 탄압, 종교 박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고 썼다.
 
이 센터장은 “일부에서는 이 보고서의 목적이 미국 국민 사이에 유행하는 반중 정서를 활용해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면서도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미중 관계가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건 시기상조적인 낙관론"이라고 했다. 이어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미중간 갈등은 쉽게 해소 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인권문제 등으로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바이든은 인권 문제와 관련 시진핑을 “불량배" (thug)라고 불렀는데 시 주석은 지난해 말 베이징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에게 "핵심 무역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하겠다는 민주당보다 트럼프를 상대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센터장은 “이번 보고서는 미 정부 내 여러 파벌의 중국에 대한 이견이 하나로 수렴된 결과이기도 하다"면서 “정부 내 온건파가 강경파로 수렴됐고, 백악관 내 ‘선거용 강경파(차이나 배싱을 선거에 이용)’가 ‘이념적 강경파(중국공산당을 본질적으로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다고 보고 중국의 부상을 좌절시키려고 함)’로 수렴되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중국이 보여준 행태는 여러 파벌의 통합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이 센터장은 “보고서는 결론에서 본 문건이 미국의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 (fundamental reevaluation)라 명시했다"면서 “한국에서 기존 미중관계를 바라보는 보편적 패러다임은 미중이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고 이데올로기적 가치대립이 없다는 점에서 과거 미소가 대립했던 냉전시대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로 이제 그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면 역사는 이 보고서를 미중 냉전의 시작 (onset)을 알리는 또 하나의 ‘X 파일’(the X Article)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이 보고서의 의미를 애써 부인하거나 그 중요성을 폄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이는 수천 년 동안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선택을 강요당한 피해의식의 작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중 신냉전은 한국에게 있어 지정학적 ‘암흑시대’의 도래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결론으로 “최상의 전략은 현실을 직시하고 험난한 앞날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옵션(미중간에 헤징·가치사슬 다변화·한국의 독자적 생존 모색 등)을 모두 점검하고 상황 악화 시나리오마다 한국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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