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란 세월동안 마음으로 58명의 아이를 낳았어요.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잠시나마 가족이 돼 준 천사들 덕분에 참 행복했습니다."
위탁모 이순임(57·여)씨의 서울 양천구 신월동 집은 언제나 아기가 울고 웃는 소리로 가득하다. 두 딸은 30대 중반으로 장성했지만 이씨의 집안은 장난감과 기저귀, 젖병 등이 가득하고 TV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흘러나온다.
그가 지난 1994년 7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위탁모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마음으로 낳아 입양을 보낸 아기는 모두 58명에 달한다.
위탁모는 입양 대상 아동들을 양부모가 정해질 때까지 양육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씨는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생후 두 달 사이의 아이들을 받아 짧게는 반년, 길게는 30개월까지 키워 입양 가정으로 보냈다.
이씨는 암 수술을 받고 입·퇴원을 반복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던 때 우연히 지인이 위탁모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아기 때문에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 가정이 참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새로운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가정이 돼주고 엄마가 돼주자는 마음이 생겼죠."
이씨는 "건강도 좋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기를 돌보느냐"는 남편의 강력한 반대를 뿌리치고 첫 아기인 도현이를 품에 안았다.
남편도 막상 도현이를 만나자 누구보다 아끼고 예뻐해 주며 든든한 지원군으로 변했고, 이씨 가정의 중심에는 아기가 자리 잡게 됐다.
이씨는 늘 아기가 좋은 양부모를 만나길 기도했지만, 금지옥엽 키우던 아기를 양부모에게로 떠나보내야 할 때의 아픔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씨는 ’이렇게 예쁜 내 아들을 어떻게 품에서 떠나보낼까’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도현이가 떠나는 날엔 온 가족이 이별의 슬픔으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는 몸이 불편했던 아기들이 아무래도 더 애틋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처음 봤을 때 ’바싹 마른 막대기’ 같아 손대기 무서울 정도였다는 선천성 장폐쇄증을 앓던 준성이는 대장을 20㎝ 이상 잘라내는 수술을 하느라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하고 특수 분유를 먹어야 했다.
가장 오랜 시간인 30개월 동안 키운 수혁이는 유독 발육이 늦어 언어·놀이치료를 해야 했다.
이씨는 "말을 못하는 게 꼭 내 잘못 같아 정말 열심히 가르쳤고 누가 수혁이에게 모자란다는 말을 하면 속이 상해 아이를 꼭 안고 많이 울었다"며 "입양 갈 때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수혁이가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 부부는 틈만 나면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아기들의 카드를 꺼내 일일이 이름을 부른다. 아기들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성격, 버릇, 투정이 모두 생생하다고 했다.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서 꿈에서만 그리던 아이들을 다시 만난 순간도 잊을 수 없다.
5년 전 그는 15년 근속상을 받아 프랑스·노르웨이·덴마크에서 자신이 길러 보낸 아이 7명을 만나는 기회를 얻었다. 덴마크에선 청소년으로 잘 자란 ’첫 아들’ 도현이를 만났다. 밝고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벅찼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위탁모 활동을 시작한 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아기들이 준 힘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며 "어디서든지 꿋꿋하게 잘 살아주길 바라고 늘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위탁 엄마가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는 8일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20년 근속상을 받는다. 이날 41명이 5∼15년 근속상을 받고, 2명이 위탁모에서 ’명예퇴임’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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