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비공개 입양일수록 검증 소홀…제도적 맹점" 지적

 

   
▲ 2살짜리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검거된 어머니 김모씨가 지난 달 29일 오전 울산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울산에서 40대 여성이 25개월짜리 입양아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과 관련, 이 여성이 입양 과정에서 재산을 부풀리거나 직업을 위조한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아무 문제 없이 입양 절차가 마무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입양아에 대한 아동학대를 근절하려면 입양 절차와 심사부터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입양아 A양을 숨지게 한 어머니 김모(46)씨에 대한 수사결과를 11월 4일 발표했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저녁 A양의 온몸을 철제 옷걸이 지지대로 수십 차례 때려 이튿날 숨지게 했으며, 평소에도 매운 고추를 잘라 넣은 물을 마시게 하거나 샤워기로 온몸에 찬물을 뿌리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의 잔혹한 범행수법 말고도 이날 경찰 발표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김씨가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위조한 서류를 관련 기관에 제출했다는 내용이다.

현행법상 입양은 ▲ 입양을 원하는 부모의 신청과 서류 제출 ▲ 입양부부 가정조사 ▲ 가정법원의 입양허가 ▲ 입양아 인도와 사후관리 등 크게 4단계로 진행된다.

신청과 서류 제출 단계에서는 가족관계증명서 등 기본서류와 함께 재산과 직업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이어 예고 방문과 불시 방문 등 최소 2회 이상의 가정조사가 이뤄지고, 여기까지 문제가 없으면 법원의 허가가 떨어진다.

입양 이후에도 부모와 입양아의 상호 적응상태 관찰 등 사후관리를 받아야 한다.

김씨 부부는 올해 1월 입양을 신청하면서 부동산임대계약서와 재직증명서 등을 함께 제출했다.

그러나 이 서류들은 모두 김씨가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주택,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사무실, 한때 운영한 식당 등 3곳의 임대계약서를 냈는데 모두 계약금액을 고친 것으로 확인됐다.

주택은 실제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인데 서류상으로는 ’전세 3천500만원’으로 고쳤다.

사무실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지만 ’전세 5천만원’으로, 식당은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50만원’이지만 ’전세 6천만원’으로 각각 바꿨다.

김씨가 위조한 계약서만 보면 부동산 임대보증금만 총 1억4천500만원에 달해 마치 상당한 자산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김씨의 살림살이는 주택 월세가 약 10개월이나 밀렸고, 도시가스비나 전기료가 수개월 연체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또 현재 울산의 한 무용협회에 소속돼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처럼 재직증명서를 제출했으나, 이 역시 수년 전 서류를 위조해 만든 것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현행법은 입양 부모의 자격조건으로 ’양자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김씨는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넉넉한 재산과 전문적 직업이 있는 것처럼 관련 서류를 위조했고, 지난 6월 법원으로부터 입양허가를 받았다.

입양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김씨 부부가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김씨 부부는 경제적 문제 등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약 2년 동안 별거 중이었다.

김씨가 A양 등 3명의 자녀와 집에서 살고, 남편은 사무실에서 생활해 온 것이다.

비록 부부가 가까이 살면서 자주 왕래했다고 하지만, 분명히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이런 사실을 숨겼고, 입양 심사에서도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입양절차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관련자의 과실이나 범죄 의도를 확인할 수 없어 혐의 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입양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비공개 입양’의 경우 부모 자격에 대한 검증과 심사가 오히려 제한되는 한계가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입양 사실을 공개하는 ’공개 입양’은 부모 자산이나 직업 등을 주위에 확인할 수 있어 입양 절차의 신뢰성이 확보되지만, 비공개 입양의 경우 비밀 유지가 최우선 조건이어서 검증과 심사가 비교적 허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용범 울산경찰청 여성청소년과 팀장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 수 없는 비공개 입양은 주변 관심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입양사실을 알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형식적인 서류 확인 정도에 그치는 것이 비공개 입양의 맹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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