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홈런왕에는 시카고 컵스의 새미 소사, 투수 평균자책 1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올랐다. 두 사람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다.
LA 다저스의 박찬호선수가 출전한 경기의 텔레비전 중계방송 덕분에 낯익은 토론토의 라울 몬데시, 클리블랜드의 매니 라미레스, 몬트리올의 블라디미르 게레로도 도미니카인들이다. 이들은 매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인다.
도미니카는 인구 800만명의 가난한 나라다. 서인도제도의 이웃나라인 아이티에서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없기 때문에 도미니카가 미국 프로야구 선수의 주요 공급원이 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동아프리카의 케냐공화국은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세계적 선수들을 배출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3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자 스포츠 해설가들은 멕시코와 유사한 케냐의 기후 조건을 우승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케냐와 기후가 비슷한 탄자니아나 우간다에서 세계적 선수가 나오지 않았으며 또한 케냐 선수들은 모든 기후 조건에서 줄곧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스포츠 과학자들은 도미니카나 케냐 같은 약소국가에서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다수 배출되는 이유를 사회적 맥락에서 찾고 있다. 다시 말해서 특정 민족이 특정 운동에 알맞은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스포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축구 럭비 크리켓 필드하키 등 많은 경기가 영국의 귀족가문에서 시작됐다. 19세기에 이튼이나 럭비 같은 명문학교의 교장들은 다루기 힘든 귀족 자제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스포츠를 활용했다.
스포츠로 인간의 폭력성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은 영국의 식민정책에 그대로 반영됐다. 원주민의 반감을 누그러뜨려 사회 안전을 도모하는 장치로 스포츠를 보급한 것이다. 케냐의 경우 영국 관리들은 달리기 운동을 소개해 원주민들이 가축 도둑질을 일삼는 불법 행위를 멈추고 말 잘 듣는 식민지 백성이 되길 기대했다. 영국 선생의 훈련을 열심히 받은 달리기 선수들은 경찰과 군대에 특채되는 행운을 누렸다.
요컨대 기후 조건이나 유전적 영향보다는 영국의 식민정책 덕분에 20세기 들어 케냐에서 세계적인 중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이다.
스포츠 보급해 식민지 다스려
예컨대 인도와 파키스탄은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서기 위해 필드하키를 육성하여 국제대회를 휩쓸게 됐다. 헝가리는 1956년에, 체코는 1968년에 소련의 침공을 받은 뒤 각각 수구와 아이스하키 시합에서 소련 선수들과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다.
소사와 마르티네스는 도미니카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박찬호선수 역시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된 지 오래다. 그가 승리하는 날에는 모든 텔레비전 방송의 뉴스로 크게 보도될 만큼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몰고 다닌다.
왜 많은 한국인이 박선수의 승패에 일희일비할까? 성공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주니까? 아니면 콧대높은 백인 선수들을 혼내주니까? 출처=동아일보 ‘이인식의 과학생각’ 2000년 1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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