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림사지 5층 석탑의 신비로운 야경

부여(扶餘)는 웅진(熊津)에서 천도한 538년부터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660년까지 123년간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한 백제의 수도였다. 당시 백제는 신라, 고구려보다 경제력이 강했고, 인구도 많았다. 또 일본 고대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뻗칠 정도로 강성했다. 하지만 빛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백제는 삼국 중 가장 먼저 역사에서 사라졌다. 문화는 찬란했지만 대외 정세에 어두웠던 탓이다.

 

 

   
▲ 백제 유적지 부소산과 낙화암

◇백제 역사가 응축된 부소산
부여 시대의 역사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은 해발 106m의 야산인 부소산이다. 부소산성, 낙화암(落花巖), 고란사(皐蘭寺), 삼충사(三忠祠) 등 부여의 명소가 이곳에 있다. 북쪽으로는 백마강이 흐르고 아래로는 부여 중심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명소이기도 하다.

부소산은 부소산문 매표소를 출발해 부소산성을 거쳐 고란사 방향으로 돌아보기도 하지만 구드래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변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한 후 고란사 아래 선착장에 내리는 것이 더 낫다. 황포돛배에서는 궁녀 수천 명이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과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낙화암’(落花巖)이란 붉은 글씨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주변 경치를 감상한 후 선착장에 내려 계단을 오르면 이내 고란사다. 규모가 작은 삼국시대 사찰이지만 방문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법당 뒤에 있는 고란약수 때문이다. 한 잔을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이곳 방문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문에도 모두 한 잔 넘게 들이켠다.

 

 

   
▲ 황포돛배와 부소산 유적지

고란사를 지나면 나뭇잎이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한 숲길 경사로가 이어진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낙화암 둘레로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그곳에 서면 백마강의 푸른 물줄기와 주변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황포돛배가 백마강을 가르며 지나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느껴진다. 낙화암 뒤편 백화정(百花亭)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뛰어나다.

사자루(泗樓)부터는 부여 시대의 도성(都城)인 부소산성 구역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기록돼 있는데, 부소산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약 2.5㎞ 길이로 조성돼 있다. 평시에는 왕궁의 후원으로 이용됐고, 전쟁 시에는 최후 방어의 역할을 했던 성이다. 산길을 거의 다 내려가면 백제 말엽 임금에게 직언을 해서 고초를 겪은 충신 성충과 흥수, 계백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삼충사와 동헌, 객사가 있다.

 


   
▲ 정림사지 석불좌상과 정림사지 모형


◇백제 문화의 정수, 정림사지 5층 석탑
부소산 남쪽의 도심 한쪽에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있다. 성왕이 수도를 천도한 이후 창건한 정림사(定林寺) 경내 한가운데에 세워진 탑으로 높이는 8.33m에 달한다. 당시 백제 장인들은 부식과 화재 위험을 막기 위해 목재 대신 석재를 이용해 탑을 축조했다.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배흘림 양식의 기둥을 세우고 층마다 넓은 지붕돌을 올렸다. 특히 부드러운 목재를 깎은 듯 지붕돌의 네 귀 단부를 살짝 들어 올린 솜씨에는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다. 또 기단부가 매우 좁고 낮아 마치 탑이 땅에서 솟아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백제계 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발산하고 있다.

한편 석탑 북쪽의 강당에는 고려시대 불상인 정림사지 석불좌상이 있다. 높이가 5.62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오른팔과 왼쪽 무릎이 떨어져 나갔고 몸체도 많이 마멸됐다. 또 모자를 쓴 듯한 머리 부분은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림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바로 옆에 자리한 정림사지 박물관을 찾는 것이 좋다. 박물관 건물은 불교의 상징인 ‘卍’(만) 자 모양을 연상시킨다. 중앙 홀을 중심으로 진입로, 전시실, 관리실 등이 사방으로 날개를 뻗고 있는 듯하다. 발굴 당시부터 현재까지 정림사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했고, 중앙 홀에는 정림사를 축소 복원한 모형이 설치돼 사찰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삼존불입상, 소조불, 도용편 등 각종 유물과 복제본이 있으며, 석탑 전돌과 사찰 기와를 제작하는 과정과 탑을 축조하는 과정도 모형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연꽃 아름다운 궁남지

◇궁남지, 연꽃 흐드러진 유원지
정림사지에서 다시 남쪽으로 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宮南池)가 자리한다. 부여 궁궐 남쪽에 위치해 궁남지라 불리는데, ‘서동요’를 불러 신라의 공주를 신부로 맞이한 무왕의 탄생 설화가 전해진다. 삼국유사에는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무왕은 아들 의자왕에게 왕권을 넘겨주기 전에 궁남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옛 궁남지는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고 한다. 당시 크기를 10만㎡까지 추정하는데, 수로를 내고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호수처럼 넓은 인공 연못을 판 백제인의 기술에서 당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일본서기에 7세기 초의 토목 기술자로 기술된 백제의 노자공(路子工)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첨단 정원 조경 기술을 전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역사 유적지이지만 한여름에는 연꽃 관광의 명소로 더 유명하다. 여름에 궁남지 입구에 들어서면 이내 빨갛고 하얀 연꽃이 커다란 푸른 잎 위로 고개를 내민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연꽃이 핀 연못 사이사이에 조성된 산책로를 거닐며 연꽃의 화려함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또 한쪽에는 황금빛 황수련, 가시연, 빅토리아연, 물양귀비 등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꽃 연못을 다 지나면 수양버들이 흐드러진 커다란 연못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화했다는 연못 중앙의 작은 섬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연못가에서 섬을 잇는 다리와 어우러져 한 폭의 단아한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부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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