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영웅을 홀대하니 시민들이 나섰다. 향년 100세로 세상을 떠난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 대한 각계 조문과 애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진정 어린 애도는 보이지 않는다. 여당 관계자들이 조문을 하긴 했으나 형식적인 느낌이 든다.
고인에 대한 설명은 여러 말이 필요 없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없었다"는 조선일보 사설 한 대목으로도 족하다. 묘하게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과 비교할 때 가슴이 미어 터진다. 조선일보 사설이 언급한 것처럼, 70년 전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 앞에서 낙동강에 최후 방어선을 친 백 장군은 공포에 질린 병사들을 향해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쏘라"며 선두에서 돌격했다. 그는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 명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막아내며 전세를 뒤집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백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 서울 탈환 때도 최선봉에 섰다. 그는 국군 창설에 참여했고 휴전회담 대표를 지냈으며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 참모총장을 맡으며 군 재건을 이뤄냈다. 한국군을 '민병대' 취급했던 미군도 그에게만큼은 '최상의 야전 지휘관'이라며 존경심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 부임하는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백 장군을 찾아가 전입신고를 하고, 미 육군 보병박물관은 그의 육성 증언을 영구 보존하고 있다. '6·25의 살아있는 전설' '구국 영웅' '한·미 동맹의 상징' 등 백 장군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로도 그의 업적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이 위대한 호국 원로가 목숨 걸고 지켜낸 조국에서 말년에 받은 대접은 참담하다 못해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좌파 집권세력은 그가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복무한 기록만 부각시켜 끊임없이 폄훼, 매도했다.
백 장군은 일제 치하에서 태어났다. 그 세대 사람들에겐 대한민국이란 나라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그 시절을 재단하며 백 장군을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한다. 백 장군은 "당시 중공 팔로군과 싸웠고 독립군은 구경도 못 했다"고 하는데도 집권세력과 친여세력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남침 공로로 북한에서 중용된 인물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민주당이 백 장군 별세에 애도 논평 한 줄 내지 않은 것은 그냥 나온 일이 아니라고 신문은 전했다.
정부는 백 장군을 12만 6·25 전우가 잠들어있는 서울현충원에 모시자는 각계의 요구를 외면했다. 유족도 대전현충원을 원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다. 국방장관은 "자리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여당 일각에서 '친일파 파묘법'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좌파 단체에선 '백씨가 갈 곳은 현충원 아닌 야스쿠니 신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의 안식처인 현충원에 백 장군이 못 들어간다면 누가 들어가나"고 지적했다. 아마도 김원봉 같은 인물을 이장할 수도 있겠다.
신문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호국 영웅의 마지막 길이 이런 논쟁으로 얼룩지고 있다니 부끄러울 뿐"이라며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공직자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백 장군 빈소에 조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고 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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