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대는 다음 달 1일 전문석(51)씨에게 ’제2회 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가톨릭대는 29일 "전문석씨는 저출산 문제나 가정폭력 등으로 가정 공동체가 위협받는 현실에서 본보기가 됐다"며 "임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가톨릭 정신을 실천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전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피임을 거부하고 5남 3녀를 낳아 기르고 있다.사진은 5년 전 막내 돌잔치 때 가족사진. 2014.9.29 <<전문석씨 제공>>
"생명은 인간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를 낳고부터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8남매네요."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전문석(51)씨는 결혼 뒤 이학박사 학위를 따려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머물 당시 ’신앙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한 천주교 단체가 주최한 캠프에 참가했다가 생명과 청소년들의 성에 관련한 강의를 들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내용이었고 세상에는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사는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아 충격이었습니다."
강의는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어서 인간이 함부로 낙태를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인위적인 피임 또한 낙태와 같다고도 했다.
캠프에서 돌아와 천주교 신자인 아내에게 강의 내용을 설명했고 부부는 이후부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로 약속했다.
남들처럼 자녀 2명을 계획했던 전씨 부부는 이후 18년간 5남 3녀를 낳았다.
아이들이 계속 늘면서 남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도 신경이 쓰였다. 심지어 신앙을 바탕으로 한 부부의 이런 결심을 몰랐던 전씨의 부모조차도 심한 타박을 했다.
셋째를 가졌을 당시인 1995년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기였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요즈음과는 사회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미개인을 보듯 쳐다보는 이웃도 있었고요. 왜 그렇게 무책임한 짓을 하느냐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모님도 남들 보기 부끄럽다거나 늦기 전에 ’지워라’고 말씀하셨어요."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전씨 혼자 떠안은 경제적인 부담이었다. 약사였던 아내는 결혼 직후부터 일을 그만뒀고 자녀가 늘면서 다시 일을 할 처지가 못됐다.
큰 딸(24)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2년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전씨는 퇴근 후 길거리에서 행상이 파는 3천원 짜리 작은 인형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딸의 머리맡에 놓고 잤다.
큰 선물을 기대했던 큰딸이 아침에 일어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전씨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자녀가 많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아주 궁핍하게 산 건 아니지만 우아하게도 살지 못했다"며 "회사에서 점차 직급도 올라가고 아이들도 크면서 형편이 차츰 풀렸지만 노후 준비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웃었다.
전씨는 1995년 LG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수석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톨릭대는 다음 달 1일 전씨에게 ’제2회 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가톨릭대는 "전문석씨는 저출산 문제나 가정폭력 등으로 가정 공동체가 위협받는 현실에서 본보기가 됐다"며 "임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가톨릭 정신을 실천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9월 29일 "사실 상은 집사람이 받아야 한다"며 "생명은 우리 부부에게 축복이며 또 임신이 된다면 당연히 받아들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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