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자식을 낳고 살아온 지는 어언 1만 년. 산부인과 의술의 역사는 인류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루도투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참고하자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 눈과 치아, 내장 등 각 분야 의술에 조예가 깊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산부인과 의술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정 계급에 속하는 산모에게는 수중 분만을 허락했다는 것만 봐도 이미 기원전부터 아이 낳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무통분만 연구가 진행돼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동서양에서 구전 되고 있는 무자상(無子相) 여성만 하더라도 옛날 사람들이 뭘 모르고 떠드는 허튼소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특히 수태력이 좋은 여성을 가늠하는 것보다 수태력이 떨어지는 여성을 찾아내는 증거들은 산부인과학적으로도 일부분 말이 되는, 놀라운 관찰의 방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한국 영화 한 편이 우리나라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 가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이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듣기조차 거북하고 화가 나는 씨받이’. 열 일곱, 여덟 살 정도 된 앳된 소녀가 아이를 못 낳는 양반집에 가서 대신 자식을 낳아주게 되는 과정과 그로 인한 고통을 그린 영화다.

필자는 놀라웠다. 한 늙은이가 애를 대신 배고 낳아줄 여인을 찾아다니는 장면에서 반드시 확인하는 몇 가지 때문이었다. 후보 여성들의 월경의 양과 색깔, 월경주기, 눈동자와 손과 발의 온도, 얼굴 피부색을 관찰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드시 속속곳을 내리게 해서 몸매와 치모(恥毛)를 살폈다. 그 대목에서 조선시대 무자상(無子相)을 기반으로 한 수태학이라는 것이 산부인과학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걸 새삼 느꼈다.

조선시대 사고로 설명하면, 여성이 수태하는데 지장이 없으려면 월경이 규칙적이어야 하고, 월경의 양이 너무 많거나, 덩어리가 져도 안 된다. 월경의 색깔이 탁해서도 안 되며, 빈혈이 없고 간기능이 좋아야 하니 눈동자가 맑아야 했고, 손과 발이 따뜻하다는 것은 우리 몸의 끝까지 혈액순환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무엇보다 여성의 낯빛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리 꽃다운 열일곱이라도 해도 얼굴에 지나치게 여드름이 많이 나면 안 되었고, 뱃살이 잡힐 정도로 비만이면 안 되며, 치모가 너무 무성해도 안 된다.

불임의사 입장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분석이 일리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여성의 몸에서 남성호르몬이 과다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상이 있다. 바로 여드름과 무성한 치모다. 또한 열여덟 딸기같은 순정의 나이에 뱃살이 두둑하다 못해 몸매가 D자라면 곤란하다. 여자에게 비만은 단순 대사장애 그 이상으로 인슐린의 효율성이 떨어짐으로써 수태력에 비상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임신이 안 되어서 불임병원을 찾는 여성들 중에는 다낭성난소증후군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다. 일 년에 열두 번 해야 하는 월경을 년 3-4회 겨우 하고 있다고 하질 않나, 불규칙한 월경주기 때문에 배란일이 언제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월경인 채로 몇 년간 생활했다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여성이 임신을 하겠다면 난자가 배란이 되는 디데이(배란일)를 정확하게 알아야 선택과 집중, 즉 부부관계를 때맞춰서 할 수 있다. 만약 배란이 언제일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면 임신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뿐, 임신을 위해 효율적인 노력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공통 증상이 있다. 불규칙한 생리주기와 비만과 다모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여성들에게 질 초음파를 보면 난소(난자가 들어있는) 속에 마치 염주알 모양의 난자들이 가득 차 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마치 목걸이형으로 배열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에게 호르몬 검사를 해보면 대개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온다. 여성의 경우 난자가 자라서 배란에 임박했을 때 분비되는 LH호르몬(난자를 마지막으로 성숙시키는 호르몬/배란으로 주도) 수치가 난자를 키우기 위해 분비되는 FSH(난포자극호르몬)수치의 2배 이상일 경우가 허다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은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내과의 섬(island)에 해당된다. 간단히 이해하자면, 다낭성난소증후군은 여성의 몸에서 혈당조절호르몬(인슐린)의 효율이 떨어져서 대사에 이상이 생기고 급기야 생식력에 치명타를 가하려 하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생식력과 인슐린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 한다. 인슐린이 생식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난자라는 세포가 포도당과 연관이 있으며 이는 인슐린의 효율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여성의 혈액 속에 과당과 포도당 수치가 높으면 성호르몬 양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성호르몬 결합 글로불린(SHBG)’ 단백질이 감소하고, 혈액 속에 SHBG 단백질 양이 부족해서 성호르몬 균형이 깨지게 되면 다낭성난소증후군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여성의 몸에서 인슐린이 과다로 분비되면 고농도의 인슐린과 인슐린 유사 성장호르몬 인자가 안드로젠 생산(남성호르몬)을 자극하고, 혈액에서 방출된 다량의 안드로젠이 배란을 방해하고, 뇌 속 시상하부에 있는 배란중추 기능까지 부실하게 만들어서 배란 불균형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몸에서 남성호르몬 과다로 인해 다낭성난소증후군 증세가 보이고 있다는 낌새를 어디에서 알아차릴 수 있을까. 바로 치모와 여드름일 수 있다. 여드름이라는 것은 남성호르몬으로 인해 피지 분비량이 많아져서 번들거림이 심하게 되어서 노폐물이 쉽게 피부에 달라붙으면 여드름이라는 트러블이 생기는 걸 말한다. 결국 학창시절에 지나치게 여드름이 많이 난 여학생이 생리까지 불규칙하며 치모가 너무 무성하다면 미래의 잠정적 다낭성난소증후군 위험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필자를 방문한 35세 여성의 경우, 156cm의 키에 몸무게가 72kg인 뚱뚱한 체격이었다. 한 눈에 봐도 다낭성난소증후군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월경을 1년에 몇 회 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클리토리스가 커져 있었고, 치모가 불구덩 치골(mon pubis)과 양옆 넓적다리까지 퍼져 있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대표적 증상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성의 몸에서 성호르몬 결합 글로불린(SHBG)이 줄어든다는 건 테스토스테론과 결합하는 단백질이 줄어드는 것이기에 바로 남성화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피부에 있는 효소인 환원효소(5-reductase)에 의해 테스토스테론이 DHT(디하이드로 테스토스테론)로 바뀌는 작용이 3배까지 증가하게 되어서 다모증이 될 수 있다. 만약 다모증을 치료하고 싶은데 아기를 원하지 않는 여성이거나 미혼여성일 경우, 경구피임약(호르몬제)을 복용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들이다. 배란이 불규칙한 걸 규칙모드로 바꾸기 위해서 먹는 배란유도제(클로미펜과 페마라 등)를 처방해서 규칙적으로 난자가 자라고 배란이 될 수 있는 체제로 만들어놓은 다음, 인공적인(인공수정, 시험관시술 등) 임신을 시도할 수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 중 고령 등의 이유로 빠른 시간에 임신을 원한다면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인 시험관아기 시술에 도전할 수 있겠다
. 시험관아기 시술의 경우 한 주기에 여러 난자를 키우기 위해서 과배란 주사제(난포자극호르몬 FSH가 주성분)를 처방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과배란 주사제와 배란유도제를 같이 처방해서 여러 개의 난자(난자)를 키우는 방법이 있다. 다만, 다낭성난소증후군일 경우 불임의사의 오랜 경험과 세심한 관찰 등이 있어야 한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들의 특성상 과배란 주사량 책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자칫 한 주기에 난자가 너무 많이 자라서 난소과자극증후군의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불임의사 입장에서 경험을 고백하면,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의 난자를 몸 밖으로 채취해보면 난자의 질이 일반 여성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슐린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난자 세포 또한 고난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불임의사들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심할 경우 인슐린 효율성을 위해 당뇨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다만
,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자신이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절망한다. 마치 암선고를 받은 것처럼, 불임여성이 된 것처럼 좌절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꼭 강조하고 싶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의 장점이라면 얼마든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을 위해서라도 운동과 함께 체중을 줄이면서 혈당을 올리지 않는 음식을 선택해서 먹는다면 얼마든지 몸에서 인슐린 효율성이 좋아져서 생식력이 업(UP) 될 수 있다.


한편, 마른 체형의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도 적지 않다. 말랐다고 해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의 수태력의 향상을 위해 의사의 권유를 흘려버리지 말아야 한다. 생리가 불규칙이지 않은데 의사로부터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는 징조가 심하지 않은 것이니, 감안해서 자신의 몸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면 되겠다.

간혹 의사에게 임신을 하러 왔는데, 왜 피임약을 처방하느냐?”라는 볼멘소리를 하는 환자들도 더러 있다. 산부인과에서 규칙적인 생리를 위해서 처방하는 피임약이라는 것은 호르몬제를 말한다.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자라게 하고 배란이 되게 하고, 수정란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호르몬 사이클이 있다. 바로 에스트라다이올과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이다.

여성이 한달간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것은 외부에서(몸 밖)에서 에스트라다이올과 프로게스테론을 제 시간에 맞춰서 투여하는 것이며, 덕분에 난소는 휴식을 취하게 된다. 한마디로 난소가 해야 할 일(난자를 키우고 배란시키는)을 하지 않는 체제가 되는 것이다. 배란이 될 난자도 없으니 임신이 될 리가 없다. 그렇다보니 호르몬제가 피임약으로 소통이 될 뿐이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인 여성이 무월경 혹은 생리불규칙으로 고생을 한다면, 의사와 상의해서 호르몬제를 처방받고 규칙적인 생리를 할 수 있게 몸을 만들어야 최선이지, 생리를 하지 않는 체제로 방치해 둔다면 골치 아픈 난임 케이스로 전락하게 내버려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흔히 사람들은 결혼을 놓고 인륜지대사로 말한다. 바로 자식을 잉태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기쁜 일 때문이 아닐까. 학수고대하던 임신이 되었을 때 부부가 느끼는 행복감은 세상 그 어떤 만족과 환희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계획임신을 원하고, 미래 자신에게 닥칠 난임이라는 고통을 사전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평소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끝>

 


   
 
▶조정현 교수는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영동 세브란스 병원, 제일병원, 미즈메디병원을 거쳐 현재 강남차병원에서 여성의학연구소 시험관아기센터에서 불임의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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