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유럽에 머물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전투에도 참가했다. 해외에 장기 체류하며 성공을 거둔 예술가는 한둘이 아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예이츠(1923), 버나드 쇼(1925), 사무엘 베케트(1969), 세이머스 히니(1995) 모두 거의 타국에서 살다시피 했다. 작곡가 윤이상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일본 유학을 거쳐 독일에 머물면서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사진=뉴시스DB

 

1899년생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적어도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성공한 소설가이다. 나보코프는 1955년 성적으로 조숙한 12세 소녀가 주인공인 '롤리타(Lolita)'를 펴내 명성을 얻었고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등 많은 걸작을 남겨 1954년 노벨상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역마살이다. 두 사람은 객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팔자를 타고났다. 러시아 태생인 나보코프는 가족과 함께 영국, 독일, 프랑스로 전전하다가 미국에 정착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유럽에 머물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전투에도 참가했다.
 
해외에 장기 체류하며 성공을 거둔 예술가는 한둘이 아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예이츠(1923), 버나드 쇼(1925), 사무엘 베케트(1969), 세이머스 히니(1995) 모두 거의 타국에서 살다시피 했다. 화가 중에서는 프랑스의 폴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스페인의 파블로 피카소가 프랑스에 오래 머물렀다. 작곡가로는 러시아 태생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스위스와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오스트리아의 아널드 쉔베르크가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런 사례는 예술가의 해외 생활이 작품의 독창성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낳게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심리학자들이 해외 체류가 창의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프랑스의 윌리엄 매덕스와 미국의 애덤 갈린스키는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미국 대학생 150명과 미국 유학생 55명 등 2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통해 유학생이 훨씬 창의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들에게 양초 한 자루, 성냥개비 몇 개, 압정이 든 상자를 주고 양초가 탈 때 촛농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끔 양초를 마분지 벽에 붙이도록 했다. 양초를 압정 상자 위에 올려놓고 압정으로 그 상자를 벽에 고정시키면 된다. 이 해답을 내놓은 비율은 미국에 오래 머문 유학생이 60%인 반면 해외에 살아본 경험이 없는 학생은 42%에 불과했다.
 
이 논문은 해외 생활 경험이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외국에 살면 고향에서 접해보지 못한 수많은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대하게 되므로 창의적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해외에 오래 머물면 여러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음식을 접시에 남기는 것이 식사 대접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되지만, 미국에서 그러한 행동은 음식의 맛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모욕의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해외에 살지 않으면 이러한 문화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해외 생활이 창의적 사고에 큰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국내에 있을 때보다 해외에 나가 있으면 새로운 생각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 상태가 되므로 창의성이 계발될 기회가 많아진다.
 
작곡가 윤이상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일본 유학을 거쳐 독일에 머물면서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외국의 처자식에게 송금하느라 허리가 휘는 기러기 아빠들에게 이 연구결과가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으련만. 출처=《마음의 지도》 70~72p, 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09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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