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경구에 의존하여 지식의 힘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고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했던 인간 중심의 활동이 지금에 와서 그 역풍을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요나스는 정의, 평등, 사랑과 같은 기존의 전통윤리와는 다르게 미래 윤리의 원칙으로 ‘책임’을 강조했다. 전통윤리는 행위의 결과를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만을 문제시했기에 그 결과가 미래에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술행위를 규제하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약 15년 뒤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2016년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2030년 가상의 사회복지사 ‘조셉(joseph)’이 SNS를 사용하는 모습이다. 사진=삼성전자뉴스룸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행복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은 지극한 얘기다. 문제는 과학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고, 이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보건사회연구’ 편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영전 한양대 의과대학·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3월 발간한 ‘보건사회연구(39권 1호)’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과학기술 시대의 보건복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 문제를 짚었다. 그는 ‘초미세먼지 대란과 규제 샌드박스’의 사례를 들면서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다섯 가지 패러독스’를 극복해야만 ‘온존(well-being·穩存)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가 거론한 다섯 가지 패러독스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패러독스’다.
 
지금의 위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마법의 탄환’으로 여겨왔던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만능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세?초미세 먼지 문제에 대한 중요 해결책 역시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여전히 인공강우, 공기청정기, 플라즈마 등 또 다른 과학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두 번째는 ‘키케로(Cicero) 패러독스’다.
 
2000여 년 전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모두들 노년에 도달하기를 바라면서도 일단 도달하고 나면 비난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되고 이치에 어긋나는가!"라고 한탄했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완벽함을 지향할수록 우리의 노년은 길어지고, 우리의 불완전함은 더욱 부각된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과학기술을 통해 그 ‘완벽함’에도달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불리던 존재가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시간 감각 불일치 패러독스’다
  
현재 과학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위험은 시차를 가진다. 다시 말해 현재의 위험보다 미래의 위험과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애 안에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욱이 미래세대의 목소리는 늘 기성세대의 목소리보다 작고 힘이 없다.
 
네 번째는 ‘공범 또는 공범 만들기 패러독스’다.
 
과학기술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너도 자동차, 비닐 더 나아가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곧바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더 크고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과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이들을 섬세히 구별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증가하는 격차 패러독스’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거대 과학과 거대 자본의 결합은 강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전문지식에 취약한 일반 시민은 더욱 왜소해진다.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더 큰 격차를 만드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패러독스로 인해 과거 인류가 직면하지 못했던 더 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은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약 200년 뒤에는 (지구상에) 인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되어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업그레이드할지도 모른다"면서 “2200년에 지구를 지배할 생명체는 우리가 침팬지나 네안데르탈인과 달랐던 것보다도 더 많이 우리와 다를 것이다"고 말했다.
 
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는 “앞으로 50년 간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이나 200년 후에는 더 이상 지구에 인간이 살지 않게 되거나 석기시대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는 “앞으로 50년 간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이나 200년 후에는 더 이상 지구에 인간이 살지 않게 되거나 석기시대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진=삼성전자뉴스룸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런 대책 없이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지켜만 봐야할까.
 
신영전 교수는 다섯 가지 패러독스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과 생태계의 온존(穩存)’를 위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존’은 ‘well-being’을 우리말로 표현한 단어인데 ‘온전(穩全)’하게 ‘존재(存在)’함을 뜻한다.
 
신 교수는 “과학기술은 생태적 온존의 수단이어야 하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인간 기술의 정당성은 오로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온존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경구에 의존하여 지식의 힘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고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했던 인간 중심의 활동이 지금에 와서 그 역풍을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요나스는 정의, 평등, 사랑과 같은 기존의 전통윤리와는 다르게 미래 윤리의 원칙으로 ‘책임’을 강조했다. 전통윤리는 행위의 결과를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만을 문제시했기에 그 결과가 미래에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술행위를 규제하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 전문가들이 앞장서줄 것으로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온존을 그 궁극적 지향으로 하는 보건복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학 기술 그 자체와 그 발전에 대해 ‘현재와 미래세대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책임’이라는 원칙이 관철되도록 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 교수는 실천적 행동지침으로 한스 요나스의 말을 인용·제시했다.
 
“당신의 행위 효과가 지구 상에서 인간적 삶의 영속과 양립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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