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오전 10시, 집을 나섰다. 삼복더위가 한풀 꺾인듯했으나, 아직은 대지의 열기가 식히지 않았다. 목적지는 지난번처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천주교 삼각지 성당 하늘묘원’에 있는 가나야마 마시히데(金山政英, 1909-1997) 대사의 묘지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길을 잘 못 찾아서 용산의 삼각지에 갔다가 부랴부랴 오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추모식 봉행위원회(위원장: 황학수 헌정회 사무총장)가 주최하고, (사)한국불교종단 총연합회·세계인류세심운동본부·지구촌평화공생종교지도자연합회·(사)한류문화 산업진흥원 등이 후원하는 행사였다.
 
추모회 행사 시작의 모습

“지금부터 제2대 주한일본국대사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의 추모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길 마다하지 않고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이렇게 많이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자의 멘트로 시작된 행사에서 ‘애국심과 사명감’이라는 말이 여름 태양처럼 강렬했다. 행사는 헌향·헌주·헌화·헌종에 이어서 고인(故人)에 대한 묵념을 했다. 황학수(71)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추모사를 했다.
 
‘가나야마 대사의 정신을 부활해야’
 
황학수 위원장의 추모사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가나야마 대사의 정신을 부활하자는 것입니다. 요즈음처럼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더욱 절실합니다. 먼저 가나야마 대사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나야마 대사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과 더불어 오늘의 포항제철이 한국에 세워지기까지 큰 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진정한 마음으로 보낸 박수를 쳤다.
 
가나야마 대사의 진정한 친구였던 최서면(91)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추모식에 참석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요즈음 몸이 불편해서 거의 외부 출입을 못합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오늘은 가나야마 대사의 추모식이 있는 날 이라는 것 아시죠?’하더군요. 신비스럽게도 벌떡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저쪽이 저의 부모님 묘소이고, 바로 가나야마 묘지의 옆에 제가 묻힐 것입니다. 가나야마 대사가 살아 있을 때, 둘이서 이 자리를 정했습니다."
 
참으로 진정한 친구 아닌가. 죽어서 까지 나란히 묻히겠다니. 날로 각박해진 오늘날의 세태(世態)에 비하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우정이 아닐 수 없다. 최원장은 바티칸에 가서 교황을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같은 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이 또한, 운명이런가
 
추모사를 하는 최서면 원장
“저의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노’입니다. 가나야마 대사의 세례명과 똑 같아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운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의 소개로 바티칸에 가서 교황을 알현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최서면 원장의 추모사는 의외로 길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가 더욱 쩌렁쩌렁해졌다. 마치 묘소에 잠들어 있는 가나야마 대사와 대화를 하는 듯했다.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회 이건호 공동회장은 “가나야마 대사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포항제철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고, 박대통령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이병화 박사는 “대사님!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계시죠? 청와대에서 박대통령께 이임인사를 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며 눈물을 흘렸다.
 
종교의식은 감리교 이정원 목사, 석연화 대화상, 여여 종정 채정오 본부장이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행사를 집전했다.
 
이어서 김선희 원장과 피스트리 앙상블 성악가 팀이 가나야마 대사의 애창곡 ‘그리운 금강산’과, 홍순철 선생의 색소폰 연주 ‘아리랑’에 이어서, 장충렬 시인의 추모 시(詩) 헌정이 있었다.
 
‘추모시 동행’
 
'동행' 시 낭독을 하는 시인
<당신은
 아름다운 동행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계철강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우리 대한의 친구였습니다.
 (...)
 선조가 묻힌 고국의 산천을 두고
 우정의 나라 친구의 품에 묻힌
 당신의 한국사랑은
 눈물겹도록 우리를 감동케 했습니다.

 당신과의 아름다운 동행
 그 추억은 우리 한국인 가슴 속에 영원할 것입니다.>
 
장충렬 시인은 ‘이 시는 석연화 대화상이 오늘의 추모식을 위해서 직접 썼다’고 소개했다. 다시 한 번 박수의 물결이 일었다.
 
‘어머님의 은혜’로 행사 마무리 해
 
‘가나야마 대사가 즐겨 불렀다’는 ‘어머님의 은혜’의 색소폰 연주로 행사를 마쳤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어머님의 은혜는 가이없어라."
 
참석자들은 ‘비방중지(誹謗中止)·친화친선(親和親善)·공존공영(共存共營)의 플래카드를 들고서 가나야마 대사의 묘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것을 염원했다.

모두가 ‘한국과 일본이 갈등에서 벗어나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자’는 염원을 담고 있었다.
 
“나의 시신을 한국 땅에 묻어 달라. 나는 죽어서도 일한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는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의 유언(遺言)이 쓰인 플래카드가 바람 따라 세차게 흔들렸다.
 
역사는 이렇게 부지불식간 조용조용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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