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중심 혁신성장기술의 미래‘청색기술’국회 대토론회가 5월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다. 필자는 ‘청색기술과 혁신성장’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 기술이 의류 산업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했다. 연잎, 벌레잡이통풀, 솔방울 같은 식물의 구조와 특성을 본떠 만드는 직물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연은 연못 바닥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지만 흐린 물 위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연은 흙탕물에서 살지만 잎사귀는 항상 깨끗하다.
비가 내리면 물방울이 잎을 적시지 않고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잎에 묻은 먼지나 오염물질을 쓸어내기 때문이다. 연 잎사귀가 물에 젖지 않고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을 연잎 효과(Lotus Effect)라고 한다. 이런 자기정화 효과는 잎의 습윤성, 곧 물에 젖기 쉬운 정도에 달려 있다. 습윤성은 친수성과 소수성으로 나뉜다. 물이 잎 표면을 많이 적시면 물과 친하다는 뜻으로 친수성, 그 반대는 소수성이라고 한다. 특히 물을 배척하는 소수성이 극심한 경우 초소수성(超疏水性)이라 이른다.
독일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틀로트는 연잎 표면이 작은 돌기로 덮여 있고 이 돌기 표면은 티끌처럼 작은 솜털로 덮여 있기 때문에 초소수성이 돼 자기정화 현상, 곧 연잎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작은 솜털은 크기가 수백 ㎚(나노미터)이므로 나노돌기라 부를 수 있다. 이를테면 수많은 나노돌기가 연잎 표면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물방울은 잎을 적시지 못하고 먼지는 빗물과 함께 방울로 떨어지는 것이다. 1994년 7월 바르틀로트는 연잎 효과 특허를 출원했다. 물에 젖지도 않고 때가 끼는 것도 막아주는 연잎 효과를 활용한 의류가 개발됐다. 이 옷을 입으면 음식 국물을 흘리더라도 손으로 툭툭 털어버리면 된다. 이 옷 표면에는 연잎 효과를 나타내는 아주 작은 보푸라기가 수없이 많이 붙어 있다.
벌레잡이통풀은 주머니처럼 생긴 특이한 통 모양의 잎을 가진 식충식물이다. 주머니잎 안쪽 가장자리 윗부분은 뻣뻣한 털로 덮여 있지만 아래쪽 가파른 부분은 기름을 칠해놓은 듯 미끄럽다. 곤충이 주머니잎의 꿀 분비샘에 이끌려 일단 잎 속으로 들어가면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밑바닥에 고여 있는 액체로 굴러떨어져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한다. 벨레잡이통풀은 효소를 분비해 곤충을 소화한다.
러시아 태생 재료과학자인 조애나 에이젠버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동남아시아 벌레잡이통풀을 모방해 물·기름·혈액은 물론 심지어 개미까지 모든 것이 미끄러질 수 있는 표면을 개발했다. 2011년 에이젠버그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9월 22일자에 실린 논문에서 이 표면을 SLIPS(Slippery Liquid-Infused Porous Surfaces), 곧 ‘미끄러운 액체가 주입된 다공성 표면’이라고 명명했다.
SLIPS는 물만 밀어내는 연잎 효과 표면과 달리 거의 모든 물질을 쓸어내리는 자기정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유리·금속·플라스틱은 물론 직물에도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에이젠버그가 재미과학자 김필석 박사와 공동 창업한 `SLIPS테크놀로지`는 건설·군대·병원·스포츠 분야의 특수 의류를 개발하고 있다.
2006년 테니스 선수 마리야 샤라포바가 19세에 올린 국제대회 성적과 함께 그의 옷이 화제가 됐다. 솔방울 효과(Pine cone Effect)를 응용한 옷을 입고 시합했기 때문이다.
솔방울 껍데기의 두 물질이 서로 다르게 환경에 반응하는 특성, 곧 솔방울 효과를 모방한 옷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옷은 땀이 나면 작은 천들이 저절로 열려 피부가 서늘해진다. 네이처 3월 26일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솔방울 옷감이 본격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출처=매일경제 이인식과학칼럼 201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