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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시집을 손에 쥘 때까지는 그야말로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언제든지 바꾸어야 하고, 얼마든지 고쳐야 한다. 사진=김재홍 |
벌써 보름째다. 생면부지의 예버덩이란 곳에서 시집 원고 정리와 논문을 쓰겠다며 작정하고 입주한지 벌써. 처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고, 지금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입주 기한이 한 달로 정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고개를 내려가는 가속의 시간일 가능성이 높다.
괜히 조바심치지 말아야 한다. 줄어드는 날짜를 생각하다간 평정심을 잃고 만다. 새로 적는 게 아니라 퇴고와 편집에 가까운 시집 원고 정리는 최대한 냉철해야 한다.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논문 역시 논리적 사고와 충분한 자료 정리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노동이다. 때문에 서두른다거나 긴장해서는 결코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난 2주일 간 본업은 시작도 못했으니 여간 불안하고 우울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어떤 작업이든 그것이 문필일 경우에는 착상이나 발상과 같은 출발 신호가 필요한데, 바로 그것이 없었다. 그렇게 지지부진 시간만 허비면서 예버덩의 귀한 쌀만 축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하나의 착상이 떠올랐다. ‘정리와 퇴고가 아니라 교정을 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자’라는 착상이었다. 처음부터 어떤 완성도와 고차원의 성취를 기대할 게 아니라 차분히 교정을 본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일뿐더러 솔직한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관된 자세로 교정을 보았다.
한 편 한 편 살펴보는 동안 참으로 많은 허점들을 솎아낼 수 있었다. 목표치를 낮추니 오히려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정확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뿐 아니다. 교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집의 편제까지 수정할 수 있었다. 모두 4장으로 분류한 가운데 각 장에 들어갈 작품들을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기왕의 편제도 나름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새로이 작품 배치와 각 장의 순서를 변경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되었다. 시집의 높낮이야 출판한 뒤라야 평가될 일이지만 어떻든 상당히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러한 전변의 과정은 앞으로도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안다. 각오해야 한다. 이미 세 차례나 경험한 바이지만 최종적으로 시집을 손에 쥘 때까지는 그야말로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언제든지 바꾸어야 하고, 얼마든지 고쳐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일, 시인이라면 누구나 견뎌내야 하는 일. 진짜 고독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논문은 언제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