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신입생들이 청금복을 입고 지난 2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 대성전에서 신입생 입학을 고하는 고유례를 지내고 있다. 고유례는 성균관대학교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자사당(대성전)을 찾아 이를 고하는 성균관대학교만의 고유 의식이다. 사진=뉴시스

40~50대 중에는 영어에 한 맺힌 사람이 많다. 그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전혀 못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히 영어 읽기나 문법에서는 꽤 우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영어 말하기, 듣기, 쓰기 등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다. 영어 읽기 능력이 어느 수준 이상이라는 말은 영어를 구사하는 데 필요한 도구인 단어를 꽤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알고 있는 단어들을 말하려고 하는데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당수 한국인이 외국인과 대화해본 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외국인이 쓰는 단어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인데, 내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즉, ‘알고 있으나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우리의 학습방법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습(學習)이라고 하면 흔히 ‘공부’를 떠올린다. 영어로는 ‘스터디(study)’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습은 학(學)과 습(習)이란 두 단어가 모여서 된 단어다. 영어로는 ‘러닝(learning)’과 ‘엑서사이즈(exercise)’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즉 학습은 학문을 갈고닦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좀 더 쉽게 풀면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익혀야 내 것이 되며, 그래야 내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영어에 적용해보자. 과거 한국인은 영어 수업시간에 단어의 뜻을 배우기는 했을 뿐 익힐 시간은 매우 부족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을 영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했을 뿐,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배워서 알고는 있으나 익히지 않았으니 내 것이 되지 않았고, 막상 필요할 때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는 영어 공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해당한다. 탁구를 잘 하려면 ‘배운’ 다음, 반드시 ‘익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탁구 이론을 아무리 많이 배워도, 땀 흘려 연습하지 않고서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총과 총알의 기계적 구조와 탄도학에 관해 고도의 전문교육을 받아도 피나는 사격연습을 하지 않으면 명사수가 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는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삶의 지혜다.
 
『논어』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라는 말이 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이 구절을 보면, ‘학습’이 아니라 ‘학’과 ‘습’으로 나눠 표현하고 있다. 학(學)을 통해 아는 데서 그치지 말고, 끊임없는 ‘습(習)’을 통해 몸에 익숙하게 해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진정한 배움이다. 그것이 쌓인 것이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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