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우리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곳도 없었고, 그것을 대지의 지평 위로 승화시킬 요령도 없었다. 울산극장은 그런 우리들의 생명의 아지트와 같았다. 해방이긴 하지만 가둬 버리는 아지트. 사진=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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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극장은 한 번 입장하면 두 편을 볼 수 있었으므로 태화극장이나 천도극장보다 더 자주 갔다. 울산극장은 매표소부터 작고 비좁은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꼬질꼬질 냄새가 나고 복잡했으며 객석도 울퉁불퉁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영사기와 음향 시설도 건물도, 그 건물의 입지도 모두 메이저 극장들에 비하면 삼류에 가까웠다. 그러니 울산극장은 같은 값으로 두 편을 보여주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작고 낮고 이름 없는 것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뻔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냄새나고 비좁고 허름한 울산극장에서 무슨 대단한 예술적 에너지를 느끼고 비축했다는 거짓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울산극장은 그저 그런 수많은 지방 극장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거기서 영화를 보았던 어느 숫기 없는 청년이 나중에 탁월한 유명 영화감독으로 대성했는지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1980년대 중반의 청년들에게 무려 영화 두 편을 값싸게 공급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캣 피플」(Paul Schrader 감독, 1982)이나 킴 베이싱어의 「나인 하프 위크」(Adrian Lyne 감독, 1986)는 청춘의 중심을 찌르는 표창이었다. 안소영의 「애마부인」(정인엽 감독, 1982)이나 안성기ㆍ이보희의 「무릎과 무릎 사이」(이장호 감독, 1984)는 울산극장의 감동적인 명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날카롭고 뾰족한 표창이었으며, 그 끝에는 심지어 맹독까지 발라져 있었다. 그렇지만 청춘은 언제나 애써 ‘독극물’을 찾는 존재들인지 모른다.

  

울산극장에서 우리는 독사에 물려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생의 소중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의 불확정성이 우리와 함께 운동하고 있다는 기운을 느끼며 경악하기도 했다. 무문별하고 무차별적인 에너지가 분출하고 용솟음치는 속에서 우리는 객석에 앉아 흘러가는 순간을 시시각각 아쉬워했다. 수업을 빼먹고 앉은 컴컴한 밀폐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힘과 에너지와 중심과 욕망이 뒤죽박죽 뒤엉켜 꿈틀거리는 ‘해방된 감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작은 사각형에 갇혀 버린 굴절된 욕망의 진정한 해방이 필요했다. 밀실의 욕망이 아니라 광장의 무대 위에 선 창조적 욕동이 필요했다. 어둠으로 숨어드는 욕망이 아니라 대로를 걷는 욕동, 진정한 녹음방초(綠陰芳草)가 필요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곳도 없었고, 그것을 대지의 지평 위로 승화시킬 요령도 없었다. 울산극장은 그런 우리들의 생명의 아지트와 같았다. 해방이긴 하지만 가둬 버리는 아지트.

  

우리는 공인된 밀실의 쭈글쭈글한 욕망의 밀회를 즐겼던 것인지 모른다. 성적 욕망이 창조성을 향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의 방종적 소비로 흘렀던 것인지 모른다. 성적 욕망은 탐색하게 하고 표현하게 하고 음미하게 하고 아픔에 떨게 하고 행복감을 누리게 한다. 그러나 울산극장에서 느낀 우리의 감정은 창조성을 향한 청춘의 환희가 아니라 고개 숙인 채 눈동자를 굴리는 겁먹은 전쟁 포로의 순간의 해방감이었는지 모른다.

  

  

     저 아이들은 지금
     담장 모서리에 쪼그려 앉아
     MP3 플레이어 이어폰을 나눠 끼고
     서로 머리칼 부딪히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그러다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시간이 되면
     뻐끔 담배를 피우거나 소주를 홀짝이거나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거나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이 되어
     어둑한 이곳을 비출 것이다
     - 졸시, 「공터의 사랑」 중에서

  

  
그러나 성(性)은 우리를 가두기만 한 게 아니었다. 울산극장이 해방된 감옥이었던 것과 같이 우리는 성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자연히 깨달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탐색하고 표현했다. 아픔에 떨지 않기 위해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고,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 편지를 쓰고 선물을 샀다. 우리의 욕망은 아픔을 회피하는 방법을 알게 했고, 내면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웠고,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비록 우리 청춘의 성은 어둡고 그늘진 극장의 한두 편 영화에서 위안을 찾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성을 긍정할 줄도 알게 되었다.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본 우리 또래의 많은 청춘들은 확실히 그 긍정의 이유였다. 그러므로 울산극장은 한 편 값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청춘의 과도한 열기를 다스리게 한 공이 실로 크다. 그때 우리는 우리를 긍정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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