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언제나 인간에게 이로운 그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시인은 그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헤임달이나 신용카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진=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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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임달(Heimdallr)은 신들의 나라 아스가르드로 통하는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지키고 아홉 세계를 감시하는 수문장이다. 비프로스트의 열쇠이기도 한 희망의 칼 호프농을 든 채 굽어보는 영혼만 10조 개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 「토르 : 천둥의 신」(2011)에서 헤임달은 아스가르드를 지키는 단순한 수병(守兵)이 아니라 신들의 정의와 정당성을 구별하는 기준 역할을 했다.

  

거인들의 나라 요툰헤임(Jotunnheim)을 다녀오던 로키가 마법으로 그의 감시를 회피했을 때조차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그 사실 자체가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눈을 피하는 행위는 모종의 수상한 음모를 저지를 가능성을 함축하는 부당한 짓이다. 헤임달은 아홉 세상을 모두 살피고 낱낱의 영혼까지 살피는 신이다. 그는 단순한 수문장이 아니라 성과 속, 정의와 불의의 준거점이다.

  

신용카드는 묵묵히 신용 거래를 지켜낸다. 신용과 신용 불량을 나누고, 신용 사회 내부자와 퇴출 대상자를 변별해 낸다. 카드는 신용 제국의 말없는 전사이자 절대 경계이다. 신용자와 신용 불량자의 경계선만이 아니라 성실한 자유민과 불성실한 도태자라는 윤리적 기준선이기도 하다. 신용 사회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신용카드는 그만큼 냉혹한 기준이다. 아스가르드를 지키는 헤임달과 같다.

  

신용 제국의 경계선이자 성실성의 냉혹한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카드는 바로 그 점에서 신용 불량을 내포한 것이며, 신용 불량 사회의 잠재태이기도 하다. 신화 속 아스가르드와 달리 현실은 신용이 불량하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카드는, 카드 사용을 거부하는 신용자와 현금 사용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살림이 넉넉한 진짜 신용자들은 현금을 주로 쓴다는 소리를 자주 접하며,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불신용자들이 더 카드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헤임달과 신용카드는 각각 아스가르드와 신용 사회의 경계선이자 준거점이지만, 동시에 ‘신들의 나라’와 ‘신용 제국’의 몰락을 함축하고 있다. 경계와 분별은 언제나 뒤바뀌고 역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절대성은 상대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은 창조적 순간과 타락의 순간이 시시각각 교차하는 시의 세계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매순간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낡은 언어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인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언어의 곳간이 있으며, 바로 이곳으로부터 창조적 언어가 산출되기도 하고 타락한 언어가 배태되기도 한다. 시인들의 언어의 곳간은 절대적이고 폐쇄된 공간이 아니다. 어떤 언어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며, 어떤 언표도 자재로운 잠재적 공간이다. 곳간의 언어는 시인을 통과하면서 창조적 세계와 타락의 세계로 나눠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임달과 신용카드와 시인은 동일한 존재론적 위상을 갖는다. 시 세계의 수문장인 시인은 시의 성공과 몰락을 모두 함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시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심지어 타락한 시도 그것이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타락한 시’라도 그것이 시일 때 말이다. 시에서 타락이란 창조성의 배면에서 시인을 따라다니는 유혹에 불과하다. 비록 시 세계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창조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라면 결코 사람을 해칠 수 없는 것이다. 시의 본질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시가 될 수 없다.

  

헤임달이라면 아스가르드를 위협하는 어떤 것도 죽여 버리거나 제거해야 한다. 신용카드는 신용 사회의 적들을 완벽하게 척결해 낸다. 아스가르드와 신용 사회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인은 시 세계의 창조성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것을 지워 버리지 않는다. 시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이며, 시인은 그것을 위해 창조성을 추구한다. 시는 인간을 위해 다른 것을 버리지 않으며, 시인은 버려진 것도 주워서 인간에게 이로운 물건으로 만들어 내는 존재다.

  

시 세계의 수문장인 시인은 시의 성공과 몰락을 모두 함축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시는 언제나 인간에게 이로운 그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시인은 그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헤임달이나 신용카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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