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앞바다 전경과 데지마 옛거리. 사진=나가사키관광청

<파리의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그 자체가 역사공부이다. 린네(Linne), 뷔퐁(Buffon), 퀴비에(Cuvier), 생틸레르(Saint-Hilaire) 등 18세기와 19세기를 살았던 식물학자와 동물학자들의 이름이 적힌 길들을 걷다보면, 파리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이 나타난다. 한국의 서울에서 세종로, 퇴계로, 율곡로 등만을 보다가 과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파리의 길을 걷노라면, 한국사회의 문과(文科)형 지식체계가 도시의 공간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콕’을 하다가 10여년에 샀던 이종찬 박사의 <파리 식물원에서 데지마(出島)박물관까지>를 다시 꺼냈다. ‘데지마 박물관'은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長崎)에 있는 옛 네덜란드 상관(商館)이다.
   
데지마(出島)는 1634년 에도(江?)막부의 대외 정책의 일환으로서 나가사키에 만든 일본 최초의 인공섬이다. 1636년부터 1939년까지는 포르투갈 무역을 했고, 1641년부터 1859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인도회사를 통해서 네덜란드와 교역을 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면적은 약 3,969평. 지볼트(Siebold, 1796-1866) 등 네덜란드인들은 일본의 문화 및 동·식물을 자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은 데지마를 통해서 입수한 서양 서적들을 활용해서 의학·천문역학 등 연구를 촉진 시켰다. 데지마는 단순한 인공섬이 아니라 유럽문화의 보고였던 것이다. 저자 이종찬 박사는 ‘조선통신사들이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빗겨간 것은 엄청난 손실이었다’고 토로한다. 자연사·예술·상업은 삼위일체이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도 성서에 나오는 ‘창세기’는 유럽문화의 기본 텍스트라고 천명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장 11절).
 
저자 이종찬 박사는 미국 존스홈스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일본에서 동서양 문명에 대해서 탐구했다. 최근에는 열대(熱帶)가 서구문명을 연구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측면에서 ‘열대학’에 대해서 몰입 중이다.
 
이과(理科)형 지식체계와 문과(文科)형 지식 체계
 
우리는 말로는 ‘과학자나 기술자가 우대받아야 한다’면서도 아직도 미흡하다. 저자는 파리의 최초 시장이 천문학자인 동시에 과학사학자인 ‘장 실뱅 바이(Jean-Sylvain Bailly)’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은행가·제조업자·산업자본가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혁명’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시절이 한국에도 있었다. 당시에 ‘프랑스 혁명’은 마치 혁명의 전범처럼 여겨졌다. 이웃나라 일본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8-1912)이 ‘프랑스 혁명’보다도 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단지 일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했다.>
 
장영실의 동상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기술자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거리 명(名)으로 태어나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장인(匠人)을 제대로 대접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기술은 제대로 존립할 수 없다. 장영실의 역사는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사대부 중심의 사회에서 기술력을 만들어가는 장인들이 숨을 쉴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문과 일변도 사회에서는 이과(理科)형 기술력이 후대로 전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수관·이참평 등 임진왜란 때 일본에 붙잡혀간 도공들이 일본을 넘어 유럽에서까지 진출해서 ‘도자기의 꽃’을 피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행 통한 '열대학' 추구
     
“대지의 환희를 풍요한 중량이라 한다면, ‘물의 환희’는 부드러움과 휴식이며 ‘불의 환희’는 사랑과 욕망이며, ‘공기의 환희’는 자유이다."
 
저자가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말이다. 여행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낯선 토양·물·공기·불이 불러일으키는 ‘환희’가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를 탐험하고 돌아온 ‘알렉산더 홈볼트(1769-1859)’는 자연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갈라파고스와 말레이군도를 탐험하였던 ‘다윈(1809-1882)’과 ‘월리스(1823-1913)’는 진화론을 정립했다...이처럼 유럽 18세기는 ‘식물의 문명화’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과학사학자 이종찬 박사는 우리나라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식물의 날숨은 인간에게 들숨이고, 사람의 날숨은 식물의 들숨이다. 식물과 사람 사이의 유기적 호흡관계를 통해 우주는 날로 변화한다. 우주 속에서 식물의 영성은 인종·국적·계층·성별·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다."
 
식물의 자비(慈悲)를 무시하고 무분별한 자연파괴를 자행한 인간들이 코로나19를 통해 혹독한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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