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에,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가슴의 움직임에 안도하고 행복을 느꼈다. 화를 내고 울고 웃고 잠이 드는 아이는 바닷가 모래만큼이나 하늘에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수많은 행복의 조각들을 쥐고 있었다. 또한 순간순간 전속력으로 끝을 향해 질주하던 아이의 생명이 ‘힘껏’이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 왜냐면, 아이는 온 힘을 다해서 살아 냈으니까."
'아버지와 아들' 책 표지. 엄마와 아들의 마지막 사진이다.

지난달 5일 방송된 TV조선의 ‘아내의 맛’에 나경원 전 의원의 가족이 출연했다. 정치인이 아닌 ‘보통의 가정주부’로. 그런데, 딸이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나경원 전 의원은 남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도 모두 내보인 것이다. TV 출연의 이유도 단순했다. ‘딸이 출연하자’고 해서란다.
 
“아이가 좀 늦어서 한번 한 번 하는 게 오래 걸리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잘합니다. (장애) 아이들에게 자꾸 기회를 주고 도전하면 사회에서의 역할도 잘하게 되지요."
 
나경원 전 의원의 말이다. 그러한 딸이 어느덧 29세가 됐다. 음식도 잘하고, 인터넷 관련 자격증도 3개나 땄단다. 그 딸이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됐다. 엄마는 그래서 딸에게 더욱 많은 것을 시킨다. 그래도 나경원 전 의원의 딸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자란 듯싶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에 맞춰서 드럼을 치는 솜씨만 보더라도.   

 
TV에 나오는 동안 이 가정은 내내 행복해 보였으나,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남들이 모르게 가슴 저 깊은 곳에 아픔을 묻어두고 있을 것이다.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은 어떤 병일까.
 
필자는 이 방송프로그램을 계기로 각종 자료를 뒤적여 봤다. 문제는 21번 염색체였다. 발병률도 꽤 높았다. ‘백과사전’을 통해서 보다 더 자세하게 짚어봤다.
 
<다운 증후군은 상염색체 이상을 가진 질환 중 가장 흔하게 보이는 질환으로 유병률(有病率)은 약 750명 중의 1명 정도이다. 다운증후군은 정상 염색체 외에 21번의 염색체가 여분의 염색체를 1개 더 가지게 돼 생기게 된다. 특징적인 얼굴과 신체 구조가 나타나게 되며 지능 장애를 가지게 된다.>
 
<염색체는 모든 세포에 기본적으로 속해 있으며 DNA(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46개의 염색체가 쌍을 이루어서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이들 중 22쌍, 즉 1~22번 염색체는 상염색체라고 하며, 나머지 두 개는 성별을 결정하는 성염색체이다. 여자는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지며, 남자는 한 개의 X 염색체와 한 개의 Y염색체를 가진다.>
 
<다운증후군은 1866년 ‘존 랭던 다운(John Langdon Down)’이라는 영국 의사에 의해서 처음 보고됐다.>
 
‘단 하나의 보물’
    
2004년에 나온 오래된 책이지만 제목이 눈길을 끌어서 읽었다. 일본인 가토 히로미(加藤浩美) 씨의 경험담인 <단 하나의 보물>(한성례 옮김). 책 속의 내용을 간추려본다.
 
신생아의 몸무게는 2.414kg, 신장은 46cm이었다. 조금 작은 편이었지만 첫 울음소리가 우렁찼다. 사내아이였다. 어찌된 일인지 간호사는 아기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다른 방으로 데려가 버렸다. 아기의 울음소리만 멀리서 들여왔다.
 
“장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운증후군일 수 있습니다. 염색체 검사를 해보세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부부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그냥 흘려듣고 말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에서 전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다운증후군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수명이 일 년이다’는 말이 더욱 가슴을 저미게 했다.
 
아이의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다. 아키유키(秋雪). 아이가 태어난 때가 가을(秋)이었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눈(雪)을 붙였다. 불행 중 다행일까. 아키유키는 비록 모든 것이 더디었으나 꿋꿋하게 잘 자랐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특수학교에도 갈 수 있었다. 학원의 축제에도 참가했고, 여름 방학 때는 남편과 함께 셋이서 해수욕장에도 갔다.
아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가 참 좋아’라고 온몸으로 말했다. 네 살·다섯 살·여섯 살, 생일축하카드도 받았다. 하지만 책은 다음과 같이 슬프게 마감했다.
   
“돌아오는 새해도 우리 가족 셋이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엄마의 간절한 소원이 신에게 닿은 것일까. 새해가 되고 사흘 동안이나마 우리 셋은 같이 지낼 수 있었다...1월 3일 뚜렷하게 치아노제(Zyanose: 피부나 점막이 청자색의 상태)가 나타나 서둘러서 소아 의료센터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서 30분 쯤 지났을 때 아이의 심장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40분 동안 마사지와 산소흡입을 계속했지만 아이의 심장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6년간 온 힘을 다 써서 움직여 왔기 때문에 ‘이제 한계에 다다랐어요.’ 라고 속삭이듯 움직임을 멈췄던 것이다. 지난 6년간 조끔씩 줄어들었던 아이의 생명은 이렇게 조용히 끝이 났다.>
 
짧디 짧은 생명의 끝이 아닌가. 그렇지만 엄마는 ‘사람의 행복은 생명의 길이로 판단 할 수 없다’면서 쾌청하고 차가운 겨울 하늘을 향해 말한다.
 
“그래, 이 세상에 와서 참 애썼지?"
 
그러면서 엄마는 아이와 함께 보낸 6년 2개월 동안의 일을 생각했다.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괴로울 때도 많지만, 그런 날들 못지않게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생활 속에 가득했다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에,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가슴의 움직임에 안도하고 행복을 느꼈다. 화를 내고 울고 웃고 잠이 드는 아이는 바닷가 모래만큼이나 하늘에 반짝이는 별만큼이나 수많은 행복의 조각들을 쥐고 있었다. 또한 순간순간 전속력으로 끝을 향해 질주하던 아이의 생명이 ‘힘껏’이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 왜냐면, 아이는 온 힘을 다해서 살아 냈으니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러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장애인들에게 전해질 때 그들은 더욱 ‘힘껏’ 살아갈 것이다.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단, 하나의 보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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