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을 하는 한자와(半?) 신임 은행장

샐러리맨의 경우 연말연시(年末年始)는 코로나19보다도 더 긴장된다. 인사철이기 때문이다. 승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경쟁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인 작년 12월 24일 일본의 미쓰비시(三菱)UFJ 은행은 ‘한자와 준이치(半?淳一)’ 상무를 은행장(頭取)으로 승격시키는 인사를 발표했다. 부행장이나 전무 13명을 추월하는 파격적인 등용이어서 일본의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취임은 2021년 4월 1일.

 

그는 누구일까.

 

‘한자와(半?)’ 상무는 경영의 중추인 기획부문의 길을 걸었고, 나고야 영업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일개 직원에 불과했지만 은행원을 넘어 사회인의 일원으로서 진취적이며 정직하게 일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러한 미쓰비시UFJ 은행의 전격적인 인사를 접한 일본인들은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半?直樹)’ 시리즈의 실제 모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본인은 극구 부인한다. 원작자 이케이도 준(池井?潤·57)이 입행동기이기는 하나 ‘거의 안면이 없다’는 것이다.

 

작가 이케이도 준(왼쪽)과 드라마의 PR 포스터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한 개연성(蓋然性)이 있다. 이 드라마의 원작자 이케이도 준(池井?潤)은 게이오(慶應)대학 문학부 및 법학부 졸업하고, 1988년에 미쓰비시 은행에 들어갔다. 1995년 32세의 나이에 이 은행을 퇴직하고 비즈니스 책을 집필·출간하다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이케이도(池井?) 작가는 전직 은행원의 경험을 살려서 은행을 무대로 한 소설 <한자와 나오키/ 半?直樹> 시리즈를 집필했다.

  

일본 최고의 시청률로 국민적 드라마로 자리해

  

<한자와 나오키>는 TBS의 ‘일요 극장’에서 2013년 7월 7일부터 9월 22일까지 <우리들의 버블 입행 組>와 <우리들의 꽃의 버블 組>를 시작으로 총 10화(話)가 방영됐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20년 7월 19일부터 9월 27일까지 속편 총 10화(話)가 방송됐다. 인기는 7년 전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나 높았다.

 

시청률이 어느 정도였을까.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드라마 사상 42.2%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 방영 이후 원작자의 소설은 ‘아마존 품절’이라는 대박이 났다. 일본 독자들의 끝없는 찬사 속에서 570만 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소설(이선희 譯)속으로 들어가 본다.

 

<은행이라는 곳은 외부에서 보면 그럴싸하고 항상 옳은 일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감사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기를 쓰지만, ‘열심히 감사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평소의 융자(融資)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깨끗한 일만 해서는 실적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융자의 현실과 감사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은 “은행이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과거의 산물이 되고, 적자가 나면 은행도 도태되는 시대가 열렸다"고 일갈(一喝)한다. 나아가 은행의 인사 제도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한다.

 

<인사가 공정하다곤 할 수 없다. 출세하는 자가 반드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어디나 마찬가지고, 그것은 도쿄중앙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자와’는 은행이라는 조직에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다.>

 

사진: 소설 시리즈의 표지

관료체질과 무사안일주의가 만연돼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서 파헤친 일본은행의 조직 풍토는 어떠할까. 

 

<고색창연한 관료체질.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위장할 뿐, 근본적인 개혁은 없을 만큼 팽배한 무사안일주의. 만연하는 보수적인 체질 탓에 젓가락 드는 자세까지 집착하는 유치원 같은 관리체제. 특색 있는 경영방침을 낼 수 없는 무능한 임원들. 대출에 소극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세상 사람이 수긍할 수 있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오만한 체질...>


소설에서 적시(摘示)한 은행에서 임원까지 출세하려면 갖춰야 할 3종 세트다.


“일류대학 졸업. 혈연. MBA."


여기에 맞서는 ‘한자와’는 부당한 ‘갑질’은 참지 않는다. 부정한 비리는 밝혀내고야 만다. 싸움을 걸어온 자는 끝까지 무릎을 꿇린다.


이것은 일본 은행만의 문제가 아닐 듯싶다. 우리 주변의 조직 곳곳에도 이러한 병폐가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고야에서 살고 있는 방송인 이토 슌이치(伊藤俊一·67)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이나요?


“일본에서 드라마의 시청률이 40%를 넘은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 드라마’라고 불리었습니다. 최신작에서는 그 인기가 배가(倍加)되어 방영될 때마다 화제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을 까요?


“나보다 힘 있는 권력자의 불법 행위를 민간인과 동료의 힘을 빌려 막판에 대반전으로 파헤치는 데에 공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판 미토코몬(水??門: 암행어사 격인 일본의 사극)이라며 오늘날의 시대극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드라마의 전개도 빠르고, 카메라 기법도 능숙하고, 배우들의 표정 연기도 탁월했으며, 배경 음악도 상황에 잘 맞았습니다. 캐스팅(casting)도 감정 표현이 풍부한 가부키(歌舞伎: 일본의 전통 연극)나 베테랑 예능인이 가세해, 끊임없이 화제를 몰고 온 연출에 시청자들이 감탄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요소를 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의 일본은 권력자가 제멋대로의 시책을 시행하고, 일반 시민들은 빈곤의 늪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 세태에 권력자의 악(惡)을 척결해 막판에 망신을 주는 전개는 ‘가슴이 후련하다’는 평가였습니다. 시청자들을 열광시킨 주요 요소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드라마의 핵심은 권선징악(?善懲?)입니다. 악(?)을 꺾고, 정의를 관철하는 것이 오늘날 불안정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강하게 받아들여진 요인일 것입니다."


사회의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때로는 책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한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Leader)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도 같은 맥락이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전성우 譯)에 담긴 한 대목을 발췌해 봤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召命)’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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