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속달 생맥주의 진실은 이렇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창고->유통점->소매점->음식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로를 거친다. 그러다보니 생맥주의 생명인 신선도를 상실한다. 일본의 속달 맥주는 이러한 유통경로를 건너뛰어 음식점으로 직접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사진=장상인

<인류는 맥주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의례 모임·종교·정치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글부터 최초의 법(法)까지 문명은 맥주에 흠뻑 빠져 있었다...맥주는 인류의 본질이자 인류 존재의 구성요소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보나페티’에 기고하고 있는 맥주 평론가 ‘윌리엄 보스트윅(William Bostwick)’의 신간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박혜원 譯)에 쓰인 글이다. 그가 술을 만드는 브루어(Brewer: 양조자)를 찾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무엇일까.
 
“술을 빚는 행위는 사람 냄새를 풍긴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최초의 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이집트가 융성해지자 술을 빚는 일은 목마른 대중을 위해 산업규모로 확대되었다...관급맥주는 구빈원에서 노동자에게 죽을 나눠주듯 배당되었다. 아시리아 사원 노동자는 하루에 4파인트(pint)를 받았고, 기자(Giza) 피라미드 노동자는 10파인트를 받았다. 노동자들에게 마구 퍼주던 이 맥주는 질 낮은 구정물 수준이거나 오늘날 대량 생산되는 원더 브레드(미리 썰어서 파는)식빵 수준이었다. 저(低)알코올, 고(高)탄수화물 음식으로 평민들에게 공급된 연료였던 셈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이렇게 맥주를 통해서 노동력을 높이는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인가.
 
유럽의 맥주 역사 전문가 ‘야콥 블루메(Jacob Blume)’의 저서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김희상 譯)에 담긴 내용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피라미드를 건설한 일꾼은 맥주를 일당으로 받았고, 루터(Luther)는 아내가 양조장을 해서 번 돈으로 종교개혁을 주장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폴란드 출신 혁명 운동가)가 전쟁 반대 연설을 한 곳도 맥주홀이었고, 히틀러(Hitler)가 자신의 첫 정치 연설을 한 곳도 맥주홀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맥주에 이토록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이 숙성돼 있다. 또한 ‘야콥 블루메’는 맥주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맥주는 손쉽게 마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묘약(妙藥)이기도 하다"라고. 맥주는 이렇게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일본의 100년 맥주 홀, 맛으로 승부해      
 
도쿄의 중심지 긴자(銀座) 한복판에 자리한 삿포로 맥주 홀 ‘라이언’은 오픈 10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맥주회사의 본사 사옥이었던 이곳은 1924년 1,2층을 맥주 홀로 문을 열었다.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패전(1945) 후 미군이 접수했다. 미군 철수 후 1952년 다시 민간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 맥주홀은 일본인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비결이 무엇일까.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생맥주를 다른데서 운반해오는 것이 아니라, 지하 탱크에서 만든다. 생맥주를 따르는 기술자들의 손놀림도 예술이다. 카페의 벽에는 보리밭의 그림, 기둥 역시 보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맥주의 원료인 보리 일색인 것이다.
  
이처럼 도쿄의 ‘라이언’은 역사와 전통을 과시하는 독특한 맥주홀로 우뚝 서있다. 우리는 왜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맥주홀이 없는 것일까.
 
생맥주와 병맥주의 차이에 대해서 짚어본다.
 
‘병맥주는 열처리를 한 것이고, 생맥주는 열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화 된 상식이다. 그래서 술꾼들은 신선한 생맥주에 점수를 더 준다. 큰 통에서 유리잔으로 부어진 생맥주의 맛과 풍미(風味)가 병맥주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맥주가 맛과 풍미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7분 이내에 마셔야 한다’는 말이 정설로 인식되고 있다. 생맥주는 거품이 중요하다. 거품은 호프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유리컵에 담겨진 맥주를 거품이 누르는 것이다. 맥주와 거품의 비율을 8:2 정도. 거품이 호프를 지키는 시간이 5-6분이기 때문에 ‘그 때에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이 있다’는 주장이다.
 
속달(速達) 맥주로 술꾼들을 홀린다?   
  
코로나19가 오기 전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필자는 나고야(名古屋) 시내의 한 복판에서 작은 트럭을 하나 발견했다. 이름 하여 ‘속달 생맥주 트럭-’
 
‘속달(速達)’이라면 옛날의 속달 편지가 떠오른다. 자기의 마음을 상대에게 신속하게 전하기 위해서 보냈던 편지이다. 그 편지에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 인생의 엇갈린 희비가 들어있다.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한 샐러리맨은 ‘사직서를 속달로 보냈다’고 한다. 얼마나 회사가 싫었기에 그토록 서둘렀을까.
 
길모퉁이를 돌자 속달 생맥주 집이 있었다. 이른 시각인데도 사람들이 붐볐다. 필자는 기웃기웃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한호하는 젊은이들로 꽉 차있었다.
 
“간빠이(乾杯)!"
“브라보(Bravo)!"
 
모두가 루터이자, 로자 룩셈부르크였고, 히틀러였다.
 
생맥주는 신선도(新鮮度)가 생명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속달 생맥주의 진실은 이렇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창고->유통점->소매점->음식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로를 거친다. 그러다보니 생맥주의 생명인 신선도를 상실한다. 일본의 속달 맥주는 이러한 유통경로를 건너뛰어 음식점으로 직접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과거 일본의 생맥주 배달은 짧게는 3일에서 14일까지 걸렸으나 속달 시스템에 의해서 2일 내로 일본 전국 곳곳에 배달된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기사를 통해서 상황을 알아봤다.
 
<값보다 선도(鮮度)를....보다 신선한 생맥주를 도카이(東海) 지방 대기업의 술(酒)식품 도매회사가 공장으로부터 음식점에의 ‘속달’을 고집하고 있다. 격화되는 염가 판매 경쟁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 선도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주춤하는 맥주 소비와 외식산업의 기운을 북돋우려고 분발하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 정신이다. 이러한 속달 맥주에도 유의점이 있다.
 
첫째, 날마다 맥주 통을 씻어야 한다(每日洗淨).
둘째, 적정한 가스 압을 유지해야 한다(適正gas壓).
셋째, 맥주 통을 시원한 곳에 놓아야 한다(靜置冷却).
넷째, 적정재고를 유지해야 한다(適正在庫).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관리를 잘못하고 쌓아놓다가 맛을 잃으면 손님들이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시게 된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미국의 언론인 다니엘 슈라이버(Daniel Schreilber)의 책 <어느 애주가의 고백>의 한 대목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술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중독자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러다 그 에너지마저 소진되는 때가 온다. 술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술과 함께하는 삶도 상상할 수 없게 되고 마는 시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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