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교 때 나쁜 친구들이…"
“어떻게 했었나요?"
“…… "
“솔직히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치료도 할 수 없어요."
 
필자를 찾아온 서른 아홉 살 L씨는 남자인 내가 봐도 유난히 기골이 장대하고 우람했다. 겉으로 봤을 때 사내로서 그 어떤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을 정도였다.
 
“(나쁜 친구들이) 요도로 물파스를 강제로 넣고 자위행위를 시켰어요. 정액이 못 나오게 요도를 꽉 잡았는데, 안에서 뭔가 확 터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사정을 한 건가요?"
“모르겠어요. 한 것 같기도 해요 그날 이후 저는 제 생식기가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장애인처럼 살아왔어요. 발기가 잘 안 되고…"
 
L씨는 어린 시절의 충격적이고 아픈 기억을 의사에게 서슴없이 고백했다. 대부분 남자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무자비하게 밟혔던 일을 떠올리는 걸 죽기보다 싫어 한다.
 
다행이었다. L씨는 그 어처구이 없던 일을 말해야만이 그것에서 비롯된 병변과 그 대책을 세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봇물 터트리듯 쏟아냈다.
 
L씨는 중학교 때의 성추행 기억 때문에 성욕이 사라졌고, 새벽 발기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체적으로 사내들은 그 지경이 되면 결혼은 먼 나라 이웃나라 정도가 아니라,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하는 히말리야 산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종의 ‘남자’라는 자긍심을 거세당해 버린 것이나 다를바 없다.
 
필자가 L씨를 진찰해 봤다. 외부생식기와 음경 고환 상태는 정상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젊은이답지 않게 복부 비만이 너무 심했다.
 
“운동을 하나요?"
“이 문제에 대한 고민 때문에 운동할 기분이 안 납니다."
“직장엔 나갑니까?"
“(직장에서) 최근에 짤렸어요.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힙니다."
 
도저히 문진만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서 빠른 속도로 검사를 진행시켰다. 소변검사 혈액화학 검사 및 음경 고환 초음파를 해 보니, 특별한 이상 없었다.
 
초음파로 음경을 살펴봤는데 정상이었다. 다만, 고환에 조그만 결절이 보였는데, 부고환염이 아닐까 의심이 되긴 했다. 혹시나 해서 종양지표 검사까지 해 보았다.
 
그나저나 의사인 내가 봤을 땐 L씨는 비만이 문제였다. 혈액화학 검사에서 중성지방과 LDL이 증가 되어 있는 걸로 봐서, 또 뱃살을 보아하니 고지혈증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운동 부족으로 인한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부터 당장 뛰는 운동부터 시작해서 뱃살을 줄이세요."
"....... "
 
의사가 호통치듯 말하자,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날 쳐다봤다.
 
남자에게 뱃살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사내가 너무 뚱뚱하면 혈액 속에 혈전이 생길 수 있고, 혈액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혈압도 높아질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자의 비만은 정욕의 적일 뿐 아니라 수태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될 수 있다.
 
남성 호르몬으로 대표되는 테스토스테론이 지방에서 에스트로겐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에스트로겐이 많아진다는 건 사내를 포기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리비도까지 상실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L씨의 성욕저하 원인이 학창시절의 나쁜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만 즉 심각한 뱃살이 주범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리비도 상실의 원인을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정액검사를 한 번 해 봅시다."
“자위조차 안 되는데 정액검사를요?"
“해 봅시다."
 
L씨가 종이컵에 정액을 받아서 나오기까지 약 30분이상이 걸렸다. 그만큼 그 일(?)에 긴장하고 주눅이 들어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자들은 무사한 듯 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빠르게 꼬리를 흔들며 활발히 돌아다니는 정자가 발견이 되었다. 정자의 운동성과 숫자가 정상적인 것으로 봐서 남자로써 큰 문제가 없다고 봐야 했다.
 
“자, 현미경 보세요. 장래의 당신 아들 딸들이 뛰어 다닙니다. 빨리 장가가면 아들 딸 을 볼 수 있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우선 안심 하세요"
 
L씨의 내시경 검사 결과, 요도와 전립선 방광 모두 정상이었다. 그가 그토록 걱정하던 요도손상 역시 큰 탈이 없었다. 괜찮았다는 얘기다.
 
그는 비뇨기과 의사의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24년간 자신은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의사로부터 ‘정상적인 사내’라는 확신의 말을 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L씨는 “어려서 받은 성추행이 너무 심하게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자위를 해도 집중이 안 되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는데 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필자의 진단, “당신은 건장한 청년이고 좋은 파트너 만나 결혼하고 애기 가질 수 있다"를 듣자마자 목소리톤부터 달라지는 L씨.
 
그는 당장 내일부터 1시간 이상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치 다음 달에 결혼할 사람처럼 자신감이 넘치듯 말했다. 한편으론 혼자 끙끙 앓으면서 24년을 괜히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사람의 기억은 무섭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생각보다 끈질기게 한 사람을 괴롭힐 수 있기에 더 그렇다. 아주 충격적인 기억이 뇌에 각인이 되면 자신의 뜻하고 상관없이 그때의 두려움이 기억에 떠올라서 전 일생동안 괴로움을 느끼며 살 수 있다.
 
오죽하면 기억의 한 조각만 찾아내도 오늘 고통 그 실마리를 분석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는 말했겠는가.
 
인생, 살다가 보면 별의 별 일이 있을 수 있다. 학창시절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늘 강조하지만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그 분야 전문가에게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한다.
 
전문가만 만나면 쉽게 해결이 될 일을 혼자 고민만 하고 있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 무엇보다 전문가로부터 ’별 문제가 없다’는 걸 자신있고 명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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