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무얼 도와 드릴까요 ?" (의사)
“아직 애기가 없어서요."
“결혼 한 지 얼마나 되었지요?" (의사)
“2년이 넘었어요."
“성생활에는 이상이 없습니까?" (의사)
“부부관계는 별 이상이 없는데…"

우선 외부 생식기를 진찰해 보니 음경 음모는 모두 정상 소견이었다.

고환 크기도 정상 범위였고 정관과 부고환을 촉진(손으로 만져서 진단)해보니 양측
부고환 부위에서 강낭콩 만한 결정들이 만져졌다.

“예전에 음낭을 다치거나 성병을 앓은 적이 있습니까?" (의사)
“총각 때 딱 한 번 실수를(?) 해서 요도염에 걸린 적이 있는데요. 혹시 그게…"
“정액 검사를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의사)
“아직 한 번도…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아내는 불안해하는 남편에게 정액검사를 해보자고 달래고 또 달랬다. 드디어 정액을 받아서 현미경으로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액 속에서 올챙이 새끼같이 보이는 수많은 정자들이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야 하는데, 한 마리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씨 없는 수박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정액 속에 정자가 없었으니 여태까지 자손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유감스럽게도 정자가 안 보이네요." (의사)
“아니 그럴 수가? 정액은 나오는 데요."
“정액이 있지만 정자가 없는 걸요. 씨앗이 안 보입니다. 정자가 있어야
아내를 임신시킬 수 있는 거예요." (의사)
 
물론 선천적으로 정관 발육이 좋지 않거나 정관 통로에 이상이 있는 경우,
또는 고환에서 아예 정자 생성이 안 되는 경우에 속하는 남성 불임도 꽤 있다.
 
하지만 후천적 남성불임도 적지 않다. DNA(핵)를 담은 정자가 없는데 어찌 아내에게 임신을 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다.

후천적으로는 부고환, 정낭, 전립선 등에 염증이 생기면 정관과 부고환이 막히면서
통로가 막히는 무정자증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어려서 심한 볼거리를 앓은 후에도 후유증으로 불임이 되기도 한다. 볼거리는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으로 2차적으로 고환, 뇌수막 등에 감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절망적인 얼굴이 되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그럴까요? 고칠 순 있나요?"
“부고환에 염증으로 막힌 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수술로 치료를 해볼 수 있습니다.
고환에서 정자 생성이 아예 안 된다면야 치료를 하나마나겠지만,
정자가 나오는 통로가 막힌 경우라면 어렵지만
수술로 개통이 될 수 있기도 합니다." (의사)

이 환자의 경우 고환은 정상이었지만, 결혼 전에 한 번 실수로 인해 요도염을 앓은
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자신도 모르게 전립선염이 되었고, 다시 부고환염이 되어서 양측 부고환이 완전히
막힌 케이스였다.

0.5mm도 안 되는 실 같은 작은 관들이 얼기설기 꼬여있는 부고환이 염증으로 떡이
되어 막혔다고 상상해 보시라. 이걸 잘 풀고 연결해야 하는 어려운 수술을 시도해야만 했다.

막힌 부고환을 뚫는 건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카락 정도의
가는 관들을 미세 현미경 수술로 이어야 하니 매우 어렵다.

굵은 관을 이어주는 정관 복원 수술의 성공율이 90% 이상이라면, 부고환 문합술의
성공율은 20% 미만. 그야말로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은 수술이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1개월 후. 그 부부가 외래를 방문했다. 의사 입장에서 여간 긴장이 되는 게 아니었다. ‘과연 성공했을까?’

애석하게도 정액 검사를 해보니, 정자가 단 한 마리도 안 나왔다.

“그놈들이(정자) 살아 움직이며 꼬리를 쳐야 하는데… 아직 안 나옵니다.
소염제를 드시고 더 기다려 봅시다." (의사)

그로부터 3개월 후, 재검사를 했다. 드디어 살아서 움직이는 정자들이 현미경 시야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며 기쁨이 가슴을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축하합니다. 이제 살아 움직입니다.
마음 편히 하시고 부인 배란 날짜에 집중적으로 공략 해보세요." (의사)

그로부터 1년 후, 그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저편에서 “드디어 임신하였노라"는 빠르고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긴 해도 그는 지난날의 단 한 번의 실수를...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비뇨기과 의사이기 전에 남자다. 그럼에도 한마디 하고 싶다.

자식을 낳아야 할 남성이라면 불같은 열정과 샘솟는 리비도(성욕)로 인해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제발,
성스러운 그곳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지켜야 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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