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워런 버핏은 2010년 자신이 보유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의 85%를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후 그의 약속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번 기부를 통해 보유 주식 45%를 사회에 환원하게 됐다. 금액으로 따지면 340억 달러, 한화(韓貨)로 약 39조6700억원에 해당한다. 버핏의 재산 규모는 대략 825억 달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버핏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 이어 세계 최고 부자 인물 순위로 3위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7월 3일자 조선일보에 '얼굴 없는 기부자' 기사가 나왔다.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2016년 12월 29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나도 '사랑의 열매' 캠페인에 힘을 보태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했다. 며칠 뒤, 양복 차림의 80대 노인이 사무국에 찾아왔다. 손목엔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힌 20년 묵은 청와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노인은 직원에게 1억원짜리 수표를 들이밀었다. 직원이 "고액 기부자이신 만큼, 좋은 뜻을 기려 널리 알리고 싶다"고 하자 노인은 단호하게 "내세울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뒤돌아 사라졌다. 기부자 명단엔 기부 금액과 함께 '신원 비공개 요구'라고 적혔다. 노인은 이때부터 올해 4월까지 3년여 동안 모교(母校)인 대동세무고를 비롯해 푸르메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복지 단체에 총 10억원을 기부했다. 그때마다 "절대 보도 자료를 쓰거나 얼굴·이름을 밖으로 알리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거금을 기부하고도 복지재단 임원진 등과 식사 한번 하지 않았다. 그 '얼굴 없는 기부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34년을 일하다 1996년 6월 은평구청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권오록씨였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푸르메센터에서 권씨를 인터뷰했다.>
권오록씨는 인터뷰 당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각각 두 번씩 갈아타고 왔다고 한다. 그의 손에는 그 흔한 ‘스마트폰’이 아닌 ‘낡은’ 흰색 2G폰(일반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다는 것. '얼굴 없는 기부자' 권오록씨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너무 늦게 깨달은 기부의 기쁨을 만인(萬人)과 나누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스스로 느껴 터득하는 지혜가 중요한데 내 아들과 딸, 손주뻘 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좋은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오른손이 한 일을 가끔은 왼손이 알아도 된다는 새로운 지론을 얻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자든 가난한 자든 사람들은 왜 ‘기부(寄附)’를 할까. ‘장애이론’ ‘과시적 소비론’ 등 여러 학설이 있지만 남을 돕는 데서 발현하는 마음 속 깊은 ‘기쁨’은 인간을 만든 창조자의 선한 마음과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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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은 2010년 자신이 보유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의 85%를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후 그의 약속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번 기부를 통해 보유 주식 45%를 사회에 환원하게 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버핏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에 이어 세계 최고 부자 인물 순위로 3위에 올랐다. 사진=뉴시스DB |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인물은 워런 버핏이다. 세계 2위의 부자인 버핏은 자기 재산의 85%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이 중 80%는 세계 1위 부자인 빌 게이츠 부부가 만든 세계 최대의 자선단체에 내놓았다. ‘USA 투데이’가 2월 27일 보도한 20억 달러 이상 기부자 명단에 따르면 버핏(435억 달러)에 이어 2위는 빌 게이츠 부부(300억 달러), 3위는 존 록펠러(70억 달러)로 나타났다. 헨리 포드 부자는 6위, 앤드루 카네기는 7위를 차지했다.
버핏은 학창시절 신문배달을 했으며 12달러짜리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중고차를 몰고 다닐 만큼 검소하다. 록펠러, 포드, 카네기도 돈을 벌 때는 피도 눈물도 없이 악착같았지만 성공한 다음에는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기부 행위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기업가 정신으로 칭송되지만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타적 행동을 분석한 표준이론인 혈연선택과 상호이타주의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혈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혈연으로 맺어진 개체들은 구성원들이 공유한 유전자를 영속시키기 위해 가까운 친척에게 이타적인 혜택을 베푼다. 한편 상호 이타주의 이론의 기본은 “네가 나의 등을 긁어주면 내가 너의 등을 긁어준다"는 식의 호혜적 행동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갑부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물질적 보답도 기대하기 어려운 낯선 사람들을 위해 고생해서 번 돈을 선뜻 기부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선 행위는 물론 돈 많은 기업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시민들도 서울역 광장에서 헌혈을 하고, 성탄절이면 양로원에 선물을 보낸다. 이러한 제3의 이타적 행동은 인간이 이기적인 측면이 강함과 동시에 더불어 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동물임을 보여준다. 자선 행위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행동경제학자와 진화심리학자들이 다양한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 뉴멕시코대의 제프리 밀러 교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진화심리학자인 밀러는 2000년 펴낸 ‘짝짓기 심리’(Mating Mind)에서 자선이 성적 과시를 위해 진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20세기의 과학은 오로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만으로 마음의 진화를 설명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면서 “짝 고르기를 통한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 인간 마음의 진화에서 무시되었다"고 지적했다. 자연선택 이론은 생물이 생존경쟁에서 이기려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성 선택 이론은 동물이 자손을 얻기 위해 짝을 찾으려고 경쟁하며 진화했다고 본다. 밀러는 자연선택으로는 인류의 조상들이 낮에 부딪쳤던 생존 문제밖에 설명하지 못하므로 성 선택으로 그들이 밤에 겪었던 짝짓기의 고민을 풀지 못하면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선이 진화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록펠러 재단은 록펠러에게 공작새의 꼬리와 같았다"고 표현했다.
공작 수컷이 지닌 화려하고 긴 꼬리는 성 선택의 상징적인 사례이다. 1975년 이스라엘의 아모츠 자하비는 ‘장애 이론’(Handicap theory)으로 수컷 공작이 생존에 장애가 되는 꼬리를 달고 있는 까닭을 설명했다. 긴 꼬리는 수컷이 핸디캡을 극복할 능력, 곧 우수한 유전적 자질을 갖고 있음을 암컷에게 확인시켜주는 증거이기 때문에 암컷이 그런 수컷과의 짝짓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컷의 긴 꼬리는 짝짓기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성적 장식으로 진화된 셈이다. 경제학의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1899년 시카고대의 소스타인 베블런 교수는 사람들이 비싼 사치품으로 장식하여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려는 성향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밀러는 ‘인성과사회심리학회지’(JPSP) 7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신의 ‘짝짓기 심리’ 가설이 실험을 통해 뒷받침됐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자선 행위가 성적인 과시 본능에서 진화되었다면, 남자들이 여자를 유혹할 때 선심공세를 펼치는 심리를 알 것도 같다. 출처=《마음의 지도》 140~142, 조선일보 ‘이인식의 멋진 과학’ 2007년 9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