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지난 5월 9일 오후 대구 중구 삼덕동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부친상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주호영 원내대표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DB

“선패자불망(善敗者不亡). 잘 패한 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제갈량이 갈파한 경구다. 전쟁도, 선거도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인 것, 패할 때 패하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해야 권토중래가 가능하다. 잘 패해야만 전열을 재정비하는데 드는 시간과 자원을 아낄 수 있지 않겠는가.
 
어느덧 미래통합당이 4·15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지 한달여가 지났다. 그렇다면 과연 통합당은 잘 패했는가. 전대미문의 패배를 거울삼아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비상하기 위해 처절한 자성을 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아직도 통합당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일패도지(一敗塗地)'의 모습만 보인다. 앞으로 다가올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위기감이 전혀 느끼지지 않는다.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극심한 내부갈등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탄핵의 그림자에 따른 패배 의식을 극복하고 처절하고 절박한 집권의지로 내년 보궐선거와 차기 대선을 제대로 준비하라.“
 
시대와 국민이 통합당에 요구하는 정언명령(定言命令)이다. 먼저 불필요한 자학(自虐)은 생산적인 반성이 아니다. 모든 정치적 결과에는 비르투스(Virtus)와 포르투나(Fortuna)가 동시에 작용한다. 절반은 역량이, 나머지 절반은 운명의 여신이 좌우한다는 뜻이다. 이번 총선은 보수가 역량도 부족했지만 '코로나'라는 행운의 여신이 현 정권에게 미소지었다.
 
3년간의 모든 실정(失政)이 코로나에 묻혀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았는가. 또한 퍼주기 포퓰리즘이 하루아침에 한국판 뉴딜로 둔갑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악조건에서 통합당의 지역구 41.4% 득표와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비례 1위를 한 것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 결국 통합당은 4연속 패배에서 배태된 습관적 패배 의식을 걷어내고 '유명불우상(惟命不于常)', 천명(天命)은 항상 일정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합리적 낙관으로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통합당은 처절하고 절박한 집권의지로 대안 수권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개가 싸울때 중요한 것은  몸집이 아니라 싸우겠다는 투지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갈파한 경구다.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야의 싸움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투지다. 현재의 통합당의 위기는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 기득권에 급급하며 변화와 혁신을 게을리한 것이 근본원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통합당은 치열한 가치 논쟁을 통해 진정한 자유 우파의 길을 제시하고, 좌파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변화와 개혁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철학과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친박과 비박, 복당파와 잔류파의 계파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원팀'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국민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정권에 대한 대중의 과잉 기대와 과잉 환멸의 악순환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수구 좌파 특유의 무능을 촛불정권이라는 공허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린 현정권의 폭정도 결국 조만간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가구당 100만원씩 나눠주면서 479만원의 새 빚을 떠안기는 '적자정권'의 운명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통합당은 결코 반사이익에 안주해선 안 된다. '수구·반동·기득권 보수'의 이미지를 벗고 '혁신·책임·따뜻한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과거의 익숙한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담대하게 개척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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