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조국 수석은 개인의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해 오히려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적법'했다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뉴시스DB

 

민정수석의 본연의 임무인 인사검증에 '역대급 무능'을 보이고 있는 조국 수석의 '오지랖 넓은 영웅 놀이'가 국민의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고 있다.
 
헌법에 입각해 국정을 집행하는 장관과 달리 가급적 드러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해서도 안 되는 일개 비서인 조 수석의 월권이 도(度)를 넘고 있다.
 
죽창가, 산업자원부 보도자료 사전 공개, 특정 언론에 대한 부당한 공격 등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중 1965년 한일협정과 이후 대법원 판결에 대한 그의 글은 법학자로서 최소한의 양식조차 의심케 한다. 한마디로 그는 법에 무지(無知)하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정치적 이해(利害) 때문에 견강부회(牽强附會)의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필자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법학에서 ‘배상’과 ‘보상’은 본질이 전혀 다르며, 따라서 소멸시효나 손해액의 산정기준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논리적으로 '배상'과 '보상'은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떤 행위가 '불법'이면서 동시에 '적법'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일본의 한국 지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만약 '불법'이라면 '배상'을 받아야 하고, '적법'하다면 '보상'을 받아야지 '보상'과 '배상'을 이중으로 둘 다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하에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과 이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조 수석의 해석에 대해 살펴보자. 전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는 받았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2.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1)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2)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3. 2012년 대법원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하여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
 
결국 조 수석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의 한국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이며, 따라서 1965년 받은 '보상'과는 별도로 얼마든지 일본의 불법에 대한 개인의 '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조 수석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과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1965년 받은 3억 달러가 불법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적법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은 협정문 어디에 있는가?
 
'청구권 협정’의 골자는 “일본은 한국에 10년에 걸쳐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제공한다(제1조)"와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제2조)"인데 여기에 '보상'이라는 표현이 있는가? 조 수석은 과연 협정문 전문을 읽어보기는 했는가?
 
필자도 1965년 한일협정이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명시하지 않고, 반성과 사죄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문제로 본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일본에 점령됐거나 손해를 입은 승전국'에 '배상'을 한정했기 때문에 승전국 지위를 얻지 못한 한국이 참여하지 못한 것도 아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1965년 당시 받은 돈을 조 수석의 주장처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일본의 완강한 반대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여러 정황상 일본의 '불법' 지배에 대한 '배상'도 당연히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 수석은 개인의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해 오히려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적법'했다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일본의 한국 지배가 '불법'이라 모든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면 우리 정부가 받은 '보상금'은 반환해야 하지 않는가? 일본의 한국 지배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적법한 보상과 위법한 배상, '둘 다 받는 것'이 가능한가?
 
상대가 있는 외교에 있어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억지 논리는 상대국의 반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도 받기 어렵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보편적 국제규범에 의한 공정한 법해석만이 모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필자는 조 수석의 지적처럼 “1965년 일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류의 표피적 질문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보편적 국제규범에 비추어 볼 때 특정국가의 식민 지배에 있어 피해국가가 국가의 '보상'과 국민의 '배상', 둘 다를 청구할 수 있느냐는 법의 근본적인 원칙을 묻는 것이다. 이 문제는 추후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현실화된다면 중요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 수석은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법률가'의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정치가'의 '배타적 민족주의적 감정'이다.
 
1965년 이후 역대 '모든 정권'이 협약과 별도로 개인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명백한 팩트의 오류가 아닌가? 또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면 개인의 배상 청구권을 부정한 '하급심 판사'와 소수 의견을 피력한 '대법관'도 모두 친일파인가?
 
주지하다시피 1965년 한일협정은 양국의 복잡한 국내 사정과 미묘한 국제정세 속에서 의도적으로 애매한 표현을 구사하여 반대여론을 무마시킨 조항도 많다. 협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조 수석이 단지 문재인 정부의 대일(對日)정책을 비판하고 일본의 주장에 동조한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 몰아가는 것은 '비열한 편가르기'에 다름 아니다. 법원칙에 따라 논쟁할 사안을 무조건 애국이니 이적(利敵)이니 하는 '낙인찍기'로 공격하는 것은 민정수석을 떠나 법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법학자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편협한 감정이 아니라 법원칙과 법논리에 입각한 조 수석의 반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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