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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蘇軾·1037~1101)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면서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불린다. 시(詩), 사(詞), 부(賦), 산문(散文)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만약 거문고 속에 소리가 있다면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갑 속에 두었을 때에는 왜 안 울리나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만약 그 소리가 손가락 끝에 있다면
만약 거문고 속에 소리가 있다면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갑 속에 두었을 때에는 왜 안 울리나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만약 그 소리가 손가락 끝에 있다면
何不於君指上聽(하불어군지상청)
그대의 손끝에서는 왜 안 울리나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의 '금시(琴詩)'죠.
음색이 깊고 웅혼해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 ‘백악지장(白樂之丈)’으로 불리는 거문고,
당, 둥, 동, 징, 등, 덩, 흥, 청 ~~~
거문고 소리는 과연 어디에서 날까요?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만약 거문고 자체에 소리가 있다면 갑 속에 두었을 땐 안 울릴리가 없겠죠.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何不於君指上聽(하불어군지상청)
또한 만약 거문고 소리가 손가락 자체에서 나는 거라면 친구님들의 손가락에서만 소리가 나지 않을리가 없겠죠.
거문고와 손가락의 오묘한 만남, 결국 거문고 소리는 손가락이나 거문고, 어느 한쪽의 산물이 아니라 양자의 결합을 통해 얻어지는 조화라고 봐야겠죠.
琴瑟琵琶 雖有妙音(금슬비파 수유묘음)
거문고와 비파 비록 아름다운 소리 가졌으나
若無妙指 終不能發(약무묘지 종불능발)
오묘한 손놀림이 없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네
'능엄경(楞嚴經)'의 가르침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만남'을 통해 창조된다고 봐야겠죠.
겉사람과 겉사람끼리의 옅은 피상적 만남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끼리의 깊은 실존적 만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러한 '실존적 만남'을 통해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無)의 존재에서 비로소 본질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겠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거문고와 손가락은 서로의 만남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의미있는 만남을 통해 비로소 묘음(妙音)을 낼 수 있겠죠.
"나는 타인과의 만남에 의해 비로소 존재한다. 고립적인 인간존재는 한계표상으로서 존재할 뿐이고,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야스퍼스)."
'他生之緣(타생지연)', 낯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사소한 만남도 모두가 전생(前生)의 깊은 인연에 의한 것(인과초경),
항상 서로가 서로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만남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저희 친구님들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저와 친구님들 되었으면 합니다.
若言琴上有琴聲(약언금상유금성)
放在匣中何不鳴(방재갑중하불명)
만약 거문고 자체에 소리가 있다면 갑 속에 두었을 땐 안 울릴리가 없겠죠.
若言聲在指頭上(약언성재지두상)
何不於君指上聽(하불어군지상청)
또한 만약 거문고 소리가 손가락 자체에서 나는 거라면 친구님들의 손가락에서만 소리가 나지 않을리가 없겠죠.
거문고와 손가락의 오묘한 만남, 결국 거문고 소리는 손가락이나 거문고, 어느 한쪽의 산물이 아니라 양자의 결합을 통해 얻어지는 조화라고 봐야겠죠.
琴瑟琵琶 雖有妙音(금슬비파 수유묘음)
거문고와 비파 비록 아름다운 소리 가졌으나
若無妙指 終不能發(약무묘지 종불능발)
오묘한 손놀림이 없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네
'능엄경(楞嚴經)'의 가르침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만남'을 통해 창조된다고 봐야겠죠.
겉사람과 겉사람끼리의 옅은 피상적 만남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끼리의 깊은 실존적 만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러한 '실존적 만남'을 통해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無)의 존재에서 비로소 본질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는 의미있는 존재가 되겠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거문고와 손가락은 서로의 만남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의미있는 만남을 통해 비로소 묘음(妙音)을 낼 수 있겠죠.
"나는 타인과의 만남에 의해 비로소 존재한다. 고립적인 인간존재는 한계표상으로서 존재할 뿐이고,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야스퍼스)."
'他生之緣(타생지연)', 낯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사소한 만남도 모두가 전생(前生)의 깊은 인연에 의한 것(인과초경),
항상 서로가 서로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만남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저희 친구님들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저와 친구님들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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