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2016년 2월 반 고흐 특별 전시회 오픈을 앞두고 미술관 인근 아파트를 빌려 '고흐의 방' 명화를 완벽히 재현하고 에어비앤비에 공유했다. 한 달 치 예약은 5분 만에 마감됐다. 온라인 티켓 판매량은 평소에 비해 250% 늘었다. 역사에 남을 '빅' 마케팅이었다.
시카고를 여행하기 위해 에어비앤비의 숙소를 검색하다가 이런 방을 보았다면 어떻게 할까?
“물감이 필요해 숙박비 10달러를 받습니다."
침실 하나를 공유한 호스트는 수염이 덥수룩한 반 고흐 씨!
       
2016년 2월 반 고흐의 특별 전시회 오픈을 앞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미술관 인근 아파트를 빌려 '고흐의 방' 명화를 완벽히 재현하고 에어비앤비에 공유했다. 한 달 치 예약이 5분 만에 마감됐다. 시카고미술관의 온라인 티켓 판매량은 평소 대비 약 250%가 급증하였다.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역사에 남을만한 이벤트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아마도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닐까? (애정을 담아 이제부턴 빈센트라고 부르자) 단 10년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그림을 그렸던, 자신의 서른일곱 번째 해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단한 생(生)을 스스로 마감한 남자.
    
네덜란드 출신의 빈센트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다소 괴팍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작은 충고에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라 생각해 선택한 일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선택은 빈센트 인생에 있어 최고의 것이었을 거라 확신한다. 빈센트는 외적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며 삶의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이었을 테니.
   
빈센트야 워낙 유명한 화가니 그의 삶이 궁금하다면 몇 번의 클릭으로 그가 직접 쓴 편지 글 까지 모두 읽을 수 있을 테니 그의 인생 역정은 이 글에선 생략하자.
    
 
오르세미술관에서도 고흐의 방은 사람들로 북적인다(왼쪽). 사진이 아닌 붓터치가 고스란히 남겨진 그림은 상상 이상의 감동을 준다.
    
  
빈센트의 그림 중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거라면 아마도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밤의 테라스’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여러 점의 ‘해바라기’일 거다. 나 역시 빈센트의 모든 그림을 사랑한다.
   
빈센트의 색은 어떤 인쇄술로도 표현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그래서 직접 보기를 추천한다. 요즘 해외여행은 약간의 마음만 먹으면 (시간이든 돈이든) 수월한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참고로 1989년 이전엔 아무나 해외여행을 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빈센트의 그림을 모두 직접 볼 순 없겠지만, 예를 들어 빈센트의 해바라기 시리즈는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일본을 방문한다면 만날 수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필라델피아미술관,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박물관, 뮌헨 바이에른 주립회화관, 도쿄 솜포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미술관, 미국 프리베이트 컬렉션이 빈센트의 해바라기를 한 점 씩 가지고 있다. 참! 개인 소장으로도 두 작품이 있으니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자. 혹시 또 누가 아는가? 그가 해바라기를 가지고 있는 소박한 모습의 부호 일지...
   
 
혹시나 했는데 네덜란드 고흐미술관에 현대자동차가 제공한 한국어 오디어가이드가 있다.
   
  
빈센트가 고갱(폴 고갱이니 폴이라고 불러야 할 텐데, 왠지 폴이라고 하면 누군지 모를 것 같다)과 함께 살았던 2개월은 빈센트에게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도 그리던 화가 공동체의 첫 멤버로 고갱을 맞이했지만 사사건건 맘이 맞지 않아 둘은 많이 다툰다. 사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은 빈센트와 고갱이 함께 지냈던 그 시절에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이다.
  
지누 부인은 빈센트가 아를로 내려와 머물던 노란집에서 가까운 카페의 주인이었다. 카페라고 하지만 시골마을에 값싼 술을 팔고 동네 사람들이 한가로이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지누 부인은 한가한 시간엔 빈센트의 모델이 되어 주었고, 노란집을 떠날 땐 빈센트의 짐을 맡아 주었으며, 외지인인 빈센트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어 준 사람이었다. 고갱과 빈센트는 똑같이 지누 부인을 그렸다. 특히 빈센트가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은 5점이나 된다. 빈센트가 그린 다섯 점의 지누 부인 초상에는 책들 혹은 고급스러운 양산과 장갑을 앞에 놓은 지누 부인이 그려져 있다. 술집 주인이기보단 소박하고 우아한 중년의 부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갱이 그린 ‘아를의 카페’에는 술병을 앞에 둔 지누 부인, 그 뒤론 술에 취해 흥청거리고 있는 빈센트의 친구들과 창녀들(고갱이 그의 편지에 직접 표현한 대로)이 그려져 있다. 어쩜 고갱이 그린 지누 부인의 모습이 진짜 그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센트는 지누 부인을 향한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그림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화가에게는 그림을 주문하는 패트런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 그림이 취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현대 이전에는 화가의 존재 유무(存在有無)는 패트런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빈센트의 동생 테오가 그 역할의 일부를 대신했지만,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아주 싸게 팔았던 빈센트. 그에게 모델이 되어주고 그림을 보고 기뻐해 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빈센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반 고흐미술관을 나오며 만난 풍경(왼쪽). 오르세미술관 소장의 지누 부인의 초상.
  
  
우리 자신의 삶은 정말이지 초라하고, 우리 화가들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 사람을 사랑하는 현실적인 사랑을 앗아가 버리는 이 불쾌한 지상'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소면의 멍에를 지고 끙끙대고 있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간 빈센트,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늘 빚진 마음으로 더 처절하게 그림을 그려 보답한 빈센트.
  
반 고흐. 고흐미술관을 나오며 만난 하늘은 검은 먹구름을 밀어내며 파란 얼굴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마침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가 빈센트가 생을 마감한 오베르의 밀밭에 그려진 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먹구름 뒤의 파란 하늘을 봐...나는 끝내 보지 못했지만...그럼에도 분명 파란 하늘은 존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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