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진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높은 노인 빈곤율과 낮은 노인 공적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낮은 공적 지출로도 노인 빈곤율 수준을 낮게 유지하고 있는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이는 근로연령 빈곤율과 아동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과 대조적인 현상으로 생애주기간, 세대간, 계층간 재분배 수준이 낮음을 의미한다. 특히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노인인구 비율 14%에 도달한 시점에 GDP의 6% 중반대를 노인에 대한 공적(公的) 이전으로 지출한 것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2.23%만을 지출했다.
 
이에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최근 ‘노인빈곤과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사연 발간 '보건복지 이슈&포커스'에 게재했다.

 
여유진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높은 노인 빈곤율과 낮은 노인 공적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낮은 공적 지출로도 노인 빈곤율 수준을 낮게 유지하고 있는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대간, 계층간 양보와 타협을 통해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고, 세대간 연대의 제도화에 대해 국민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작업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의 노후소득보장은 세대간 재분배, 생애주기간 재분배, 계층간 재분배가 가장 첨예하게 얽혀 있는 부문이다. 여기에 노령은 주요 사회적 위험(노령·질병·실업·산재 등)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리고 가장 장기간 경험하는 위험요인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노후소득의 상실 혹은 급격한 저하를 경험함으로써 이전소득(income transfer)에 의존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따라서 서구 선진국의 경우 공적 사회지출 중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의료지출을 제외하고는 노인 소득보장 분야에 대한 지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간 연대(효 문화)에 의존했던 노후소득보장을 사회적 연대(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치환하지 못한 결과,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에 대한 공적이전 수준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인 빈곤율은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할 때 4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2013년 기준으로 47.2%에 달했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노인 빈곤율이 높은 국가는 호주인데 우리나라는 호주보다 13.5%p 더 높다. 더구나 호주의 경우 중위소득 40%를 기준으로 한 노인 빈곤율이 8.0%로 크게 떨어지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38.7%를 기록해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여 주고 있다.
  
또 대부분의 OECD 회원국들에서 근로연령층의 빈곤율과 퇴직연령층의 빈곤율간 차이가 크지 않고, 상당수 국가는 오히려 노인 빈곤율이 청장년 빈곤율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둘간의 상대 배율이 5.4배에 달한다. 다시 말해 노인 빈곤율이 청장년 빈곤율에 비해 5.4배 더 높다는 의미다. 이는 소득의 생애주기간, 세대간, 계층간 재분배가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생애주기별 빈곤율이 평탄화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시장에서 퇴거가 이루어지는 51세 이후 시기부터 빈곤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인구구조의 고령화로 인해 빈곤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인에 대한 공적지출 수준은 2013년 기준 2.23%(2017년 2.8%), 고령화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OECD 평균(7.7%)에 비해 매우 낮다. 주요 OECD 국가들이 고령사회에 도달한 시점, 즉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14%에 도달한 시점에 GDP의 몇 %를 노인 소득보장을 위해 지출하였는지를 살펴본 결과, 1980년에서 2013년 사이에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에 도달한 나라들은 평균적으로 6.51%를 노인에 대한 지출로 사용했다. 1980년 이전에 14%에 도달한 나라들의 경우 1980년 기준으로 평균 7.05%를 노인에 대한 지출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2013년 기준 노인인구 비율이 12.2%로 아직 14%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노인에 대한 지출이 2.23%에 불과해 14%에 도달한 국가들의 평균적인 지출 수준의 3분의 1 정도만을 노인의 소득보장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간 연대(효 문화)에 의존했던 노후소득보장을 사회적 연대(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치환하지 못한 결과,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시스DB

  

여유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빈곤율과 낮은 공적이전의 원인으로 일곱 가지를 들었다.
 
첫째, 노후소득보장의 주축인 제도라 할 수 있는 국민연금의 경우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부과(pay-as-yougo) 방식으로 출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적립(reserved) 방식으로 출발했다. 적립 방식으로 초기 연금을 시작할 경우, 연금이 성숙되기 전까지 노인들은 자력으로 살아가거나 가족의 사적 이전에 의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노인은 빈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KDI(한국개발연구원)의 1986년 보고서에서는 제도가 성숙 단계에 이르면 ‘적립 방식 → 수정적립 방식 → 수정 부과방식 →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 갈 것을 제안했었다.
    
둘째, 하향식 공적연금 확대 방식으로 인해 정작 노후 빈곤에 노출될 위험이 가장 큰 집단이 가장 늦게까지 대상 범주에 포함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실질적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7년 12월 말 기준으로 3.17%는 장기체납자, 11.81%는 납부예외자, 0.73%는 공적연금 비적용자로 분류되며, 28.48%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있다. 이렇게 18~59세 총인구 가운데 44.19%(1442만 1000명)는 일정 시점에서 보험료를 내지 않는 인구집단이다.
   
셋째, 산업 양극화와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 그리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문제를 들 수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중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5인 미만 영세사업장 근로자, 비정규직, 영세자영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이다. 이들은 공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 이외의 수단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기 어려운 계층이다. 2017년 말 기준으로 5인 미만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72.0%, 비정규 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4.9%로,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및 정규 근로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90%를 상회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더라도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향후에 평균 기여기간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의 2010년 기준 공적연금 평균 기여기간은 38.6년에 이르지만, 한국의 경우 2020년 기준 약 24.8년을 정점으로 오히려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넷째, 낮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여성의 경력단절, 성인지적 연금 수급권의 미흡 등은 높은 여성 노인 빈곤율의 주요 원인이다. 2017년 기준으로 15~64세 여성의 노동력 참가율은 59%로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가장 높은 나라인 스웨덴(85.7%)과는 26.7%p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독거노인 중 여성의 비율은 81.3%이며, 노인 단독가구의 빈곤율은 76.2%에 이른다.
 
다섯째, 공적연금과 기초연금의 낮은 급여 수준은 현재와 미래 노인 빈곤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들의 급여를 합하더라도 중위소득 50%에 이르기 힘든 구조다. 2017년 현재 특례를 제외한 노령연금 수급자의 평균 급여액은 약 50만 원으로, 1인 기준중위소득의 약 30%에 불과하다. 2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급여액은 약 89만 2000원으로 기준중위소득의 54% 수준이지만, 현재 20년 이상 가입자로서 연금급여를 받고 있는 노인은 두 차례의 국민연금 개혁으로 인한 소득대체율 감소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수급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2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급여액이 이 금액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2017년 기초연금액은 1인 기준 월 20만 2600원으로 기준중위소득의 12.3% 수준이다.
 
여섯째, 재정안정성 중심의 연금 개혁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의 노후소득보장 관련 정책결정구조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점도 노인 빈곤을 온존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주요 OECD 국가들의 경우 공적연금 보험료는 근로소득의 거의 2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노사(勞使) 각각 4.5%로 총 9%만을 부담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재정안정성, 보험료 부담에 대한 저항, 기업의 비용 상승 압박 등에 주안점을 두고 보험료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수급연령 인상과 대체율 인하를 선택함으로써 향후에도 국민연금의 성숙을 통해 노인 빈곤이 획기적으로 감소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궁극적으로 볼 때 노인 빈곤의 원인은 사적 부양을 대체할 공적 부양 책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 즉 ‘세대간 연대 결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적자 전망과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현세대가 져야 할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 급여 삭감, 수급연령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는 타당하지만 일부는 부당한 논리다.
 
복지국가에서 세대간 연대의 기본 원리는 개인이 각자 자신의 부모를 책임지는 확대가족 내에서의 사적 부양 책임 대신 ‘전체로서의 노인’을 ‘전체로서의 근로 세대’가 책임지는 사회적 부양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 근로 세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사적 부양 책임과 자신의 노후에 대한 공적 부양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는 ‘이중 부양 세대’라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은 오도의 여지가 있다.
 
물론 저출산·고령화의 세계적 추세로 인해 유럽 복지국가들도 부과 방식의 연금에 더해 적립 방식의 NDC(Notional Defined Contributions)연금이나 강제퇴직연금을 강화함으로써 개인의 노후 준비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전제는 세대간, 계층간 연대를 통해 적어도 현 세대 노인의 최저생활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없이 재정안정성에만 치중하는 한 노인 빈곤 완화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된다.
 
여유진 연구위원은 결론적으로 “노인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대와 보편주의에 기반해 노인 빈곤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복지국가의 사례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등이 노인 빈곤율이 비교적 낮은 수준이면서 노인지출도 낮은 나라에 해당한다.
 
여 연구위원은 “이들 나라의 공적 노후소득보장체계와 ‘복지혼합’ 실태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필요하다"며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서는 합리적 대안 마련, 이해 당사자 대표체 간의 양보와 타협뿐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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