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 OECD 기준을 들어서 많이들 설명합니다.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경제협력개발기구입니다. 간단하게 ‘세계 경제를 공동으로 발전시키고 성장시키자’는 뜻을 같이 해서 인류의 복지증진을 도모하는, 전 세계 공동 정책연구소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회원국은 2012년 기준으로 34개국이라고 합니다.
간혹 궁금하더군요. 우리나라 교육비 지출이 OECD국가들 기준으로 전 세계 1위일까? 너도 나도 자식 안 낳겠다는 이유를 말하면서 교육비 타령을 합니다. 한국의 교육비가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지 않습니까. ‘자식 한 명 낳아서 제대로 교육시키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아느냐’며 한숨을 쉽니다.
네, 알지요. 저도 겨우 낳은 아들 한 명, 유치원 보내면서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많은 돈이 나가더군요. 과목별 학습지니, 유치원비니, 태권도장이니 뭐니 정말이지 사교육비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생이 되고부터는 마음 놓고 외식 한번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면 다소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정말이지 애 교육비 지출을 감안해서 돈을 아껴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OECD기준으로 교육비 지출 1위의 나라가 아닙니다. 교육지출 분야에서 1위는 미국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이전 교육비 지출부분에서 1위는 룩셈부르크더군요. 한국은 OECD국가 중 중간쯤 되는 나라에 속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비는 OECD국가들 중 몇 위 였을까요? 1위? 아닙니다. 1위는 노르웨이입니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 계속 증가 추세이긴 하지만 OECD국가들 평균 지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쯤되면 사교육비는 OECD국가들 중 1위일 것이라고 말할 겁니다. NO입니다. 영국이 전 세계에서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드는 나라였습니다. 다만,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사교육비 지출에 있어서는 상위 나라였습니다. 이 말인즉 버는 것 대비해서 사교육비가 많이 나간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공교육비가 저렴한 나라도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비가 OECD국가 평균 수치에도 못 미쳤으니까요. 의료비만큼 저렴한 한국의 공교육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최근 도시에 거주하면서 중고교생 한두 명을 키우는 부모들은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과감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식 가르치느라 허리가 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자식이 부모의 등골 빼 먹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지, 부모가 자식 등골 빼 먹으려고 존재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세포로 내 유전자를 100% 이어받은 자식이 공부 잘 하고 반듯하게 자란다면야 등골 정도는 기꺼이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내 마음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겠지요. 나는 어쩌다 보니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살고 있지만, 자식이라도 훌륭하게 잘 된다면 무덤에 들어가면서 좀 덜 아쉽고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인간이 종족보존을 하려는 이유라고 봐집니다. 자식은 타인이 아니라 ’제2의 나’ 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이기적입니다. 이기적이라도 너무 이기적입니다. 자신은 부모의 등골을 그토록 모조리 빼먹으며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모자라 결혼하면서 전세자금까지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은 너무 힘들어서 자식을 안 낳겠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면?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말도 안 될 뿐 아니라 정말 이기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임신이 안 되는 난임으로 자식을 못 낳으면 모를까, 낳을 수 있는데 안 낳겠다는 젊은 부부들이 있다면 조상님과 부모님의 등골 빼먹은 값도 못 치르는 일입니다.
어느 시대인들 자식 공부시키는 일이 쉬웠겠습니까. 보릿고개는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조선시대 양반 자제들 볼까요? 흔히 조선시대에 양반집 자제로 태어난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명문가 자손들은 일부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가난한 양반의 자제들이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때 그 시절에는 여인네도 고달팠지만, 남정네들도 쉬운 삶이 아니었을 겁니다.
자, 보십시오. 태어나서 빠르면 5살, 늦어도 6살이면 서당 훈장에게 맡겨집니다. ‘천자문’에서부터 ‘동몽선습’ 등 초보적인 한자를 배우고 15~16세가 되면 사학에서, 지방은 향교에서 5~6년을 더 공부해야 과거시험의 예비고사 소과(초시, 복시 2단계)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나오던 그 성균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2단계 소과에서 통과해서 ‘생원’ ‘진사’ 칭호를 얻어야 하는 겁니다.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국비입니다. 그제야 종이와 붓과 식비가 나라에서 지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균관’에 들어간다고 해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하고도 과거시험 대과(3단계)에 응시하려면 1년간 수학하면서 300점을 따야 자격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더군요.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성균관 규율을 어겨선 안 되고, 심지어 밥조차 매끼마다 반드시 제 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선시대 양반의 자제로 태어나더라도 뭘 좀 해보려면 과거급제를 위해 6~7세에 서당에 들어가는 걸 시작으로 무려 20~30년간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과거급제까지 피나는 노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에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과거급제와 출사(出仕)를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는데 경제적인 뒷받침은 누가 했겠습니까. 바로 부모님이었겠지요.
조선 중기 기준으로 장원급제 평균 연령이 36.9세였다고 합니다. 간혹 장원 중에 환갑이 넘은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장원급제의 길이 멀고 먼 정신적 노동이었다는 것이겠지요. 대과(최종시험)의 합격자가 되기 위해서 삼수 사수는 필수이며, 심지어 십수~십오수 등을 거듭해야 했다니 그 뒷돈은 부모가 땀과 등골로 갖다바쳤다고 봐야할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입시학원이었던 각 지역마다 ‘서원’에 입학해서 족집게 과외를 받고 싶어도 그 서원 입학금과 비용이 어지간한 양반집에서는 힘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서원 초기에는 공짜였다고 합니다만, 조선중기를 지나면서 학비가 비싸졌다고 하더군요. 오죽하면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명분으로 들고 나오셨겠습니까.
아무튼 서원에 입학해서 공부하는 동안 서적을 사야 하고 붓과 종이를 개인 부담으로 해야 하니 부모님들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토록 등골이 휘었을까요. 그건 자식이 곧 ’나’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일부 서원에서는 학비로 쌀 몇가마니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귀밑머리가 서리처럼 하얗게 세도록 청운의 뜻을 두고 학업을 폐하지 않아야 과거에 합격을 해 보던가 말던가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문과(文科)에 도전하지 말고 무과(武科)에 도전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시는 분을 위해서 한 말씀 하겠습니다. 무인(武人)은 아무나 됩니까. 활 잘 쏘아야 하고, 용맹스러워야 하고, 전쟁에 나가서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용의가 있어야 합니다.
무과에 급제하기 위해서 기초 무예를 익혀야 하는데 무인으로써 자질이 있고 활 쏘는 솜씨도 좋아야 할 수 있지, 아무나 못했을 겁니다. 무과 지망생들은 기본 공부에 드는 비용은 기본이고 활값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했으니 아들 장군 만들어 보려면 부모 허리가 더 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물론 타고난 무예 신동(?)도 있었겠지만, 과연 몇명이나 되었겠습니까.
한편, 많은 분들이 요즘 4년제 대학교 들어가기가 자꾸 힘들어진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고시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과거의 예비고사였던 소과의 경우 15대 1의 관문을 뚫어야 했습니다. 소과(2단계)에 합격해서 대과(3단계)까지 7대 1을 뚫어야 했고요. 이 경쟁율 또한 조선 초기의 기록입니다. 결코 예비고사 소과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퇴계 이황께서도 삼수 끝에 붙었을까요.
세종임금 때만 하더라도 전국에 소과 응시자가 4~5천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1만여 명이 넘고, 조선 중후반에는 무려 6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과거시험의 합격자는 제한된 숫자인데, 응시자가 이토록 많았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을 겁니다.
장원급제는 고사하고 소과에서라도 합격을 하려면 4~5천 명 중 100~150명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대과에서 최종적으로 30~40여명이 합격합니다. 이들 중에 장원급제자가 문과 무과에서 각각 1명씩 배출이 되었겠지요. 결국 전국에서 1~2% 수재만이 과거시험에 합격을 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요즘처럼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주관식이었을 것이고, 앞뒤 면에 빼곡히 작성된 답안지의 평균 길이가 10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조선시대에는 소과에서 ’생원’, ’진사’만 되어도 그 고을에서 수재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과거시험의 길이 너무 어려워서 소과만 치고 대과를 포기해버리는 양반 사내들도 부지기수였을 겁니다. 흔히 부모님으로부터 “우리 고조부가 혹은 증조부가 진사 할아버지였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 그분이 바로 소과 합격하고 문과에는 응시를 안했거나, 했어도 낙방하셨거나..로 보면 됩니다.
어느 시대인들 인정받고 사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인간답게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고, 저 혼자 공부가 아니라 과거에 합격하는 등의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찮은 가난한 선비는 오로지 공부만이 살길이었을 겁니다.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 가족을 희생시키며 급제를 향해 공부를 했을 겁니다. 요즘처럼 대학교가 많고 직장이 다양하기라도 하면 말을 안 합니다. 수천 명 중에 몇십 명 안에 들어야 겨우 공무원이 되어서 출사를 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힘든 도전이었겠냐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부모의 허리는 요즘 부모에 비해 더 많이 휘었을 겁니다. 요즘처럼 신용카드가 있어서 외상이 됩니까, 의료보험이 됩니까. 먹을 것이 풍족했겠습니까.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며 여인네들은 어떡하든 남편을, 아들을 입신양명시키기 위해서 등골 즈음은 기꺼이 내놓았으리라 봅니다. 그 덕분에 바로 우리가 오늘 날에 태어나서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참으로 재미있는 제도가 있었더군요. 예로부터 관상쟁이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생참판(生參判)아니라 증판서(贈判書)가 될 상"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생참판은 살아서 참판이 되는 것이고, 증판서는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고 고위직에 오를 경우 아버지에게 내리는 벼슬이라고 합니다.
이 말인즉 “당신은 깜냥이 못되니 자식을 잘 키워 대성시켜서 후광을 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조선시대 중종 때 일화입니다. 의성김씨 가문의 청계 김진이 대과 시험을 보러 가다가 만난 관상쟁이로부터 이 말을 듣고 과감히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 경북 의성으로 낙향해서 다섯 아들을 모두 문과에 장원급제 혹은 급제를 시켰다고 합니다. 김진이 자식 덕분에 임금으로부터 받는 벼슬이 바로 ‘증이조판서’ 였습니다. 물론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벼슬은 아닙니다.
당시 김진은 마흔 일곱 살이 되도록 문과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불행하게 5남3녀를 홀로 키우는 홀아비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관상쟁이의 말을 듣고 청운의 뜻을 단번에 접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또한 새장가(재혼)를 가지 않고 자식교육에만 매진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산간오지 개발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요? 자식을 위한 아비의 희생이 놀랍습니다. 어지간한 어머니보다 훌륭한 아버지상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의 논리는 꿈을 접고 자식에만 몰두하라는 강요가 아닙니다. 자신의 광대한 꿈속에 ‘자식을 낳아서 잘 키우는 것’까지 포함하라는 얘기입니다. 그 또한 보람이며, 행복이며, 살아야 할 그 가치이자 든든한 나의 후원입니다.
자식에게 등골 빼먹히더라도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내 등골로 만든 것이 바로 자식인데, 자식에게 등골이 빼먹히니, 남한테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식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등골이 하나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빼먹히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또 다른 내가 잘 되는 일이니까요.
오! 제발... 그렇게 생각하며 사십시다. 그래야 덜 늙고 신명나고 미래가 약속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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