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 있는 사람은 먹을 이 없고,
아들이 많고 보면 배곯아 걱정.
지체 높은 벼슬아치 꼭 멍청하고,
재주 있는 사람은 쓰일 데 없네.
집마다 온전한 복은 드물고,
지극한 도리는 늘 쇠약하구나.
인색한 아비에 방탕한 자식,
지혜로운 아내는 꼭 못난 서방.
달이 차면 구름과 자주 만나고,
꽃 피자 바람이 그르쳐 놓네.
사물이 모두 다 이와 같거니,
홀로 웃음 아는 이 아무도 없네.
아들이 많고 보면 배곯아 걱정.
지체 높은 벼슬아치 꼭 멍청하고,
재주 있는 사람은 쓰일 데 없네.
집마다 온전한 복은 드물고,
지극한 도리는 늘 쇠약하구나.
인색한 아비에 방탕한 자식,
지혜로운 아내는 꼭 못난 서방.
달이 차면 구름과 자주 만나고,
꽃 피자 바람이 그르쳐 놓네.
사물이 모두 다 이와 같거니,
홀로 웃음 아는 이 아무도 없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썼다는 <혼자 웃다>라는 한시입니다. 한국 최대의 실학자로 대표되는 정약용은 4살에 천자문을 익혔고, 7세에 한시를 지어서 10살 이전에 자작시 모음집을 편찬했을 정도로 신동이었다고 합니다. 스물한 살 때 진사시에 합격해서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중에 정조임금의 눈에 들어서 인정을 받았지만, 정식으로 출사(出仕)해서 벼슬길에 오른 건 스물 여덟살에 본 과거시험(식년문과 갑과)에서 2등으로 급제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만나서 인연을 맺는가에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 정약용도 예외가 아니었나 봅니다. 정약용의 인생에서는 이벽(조선 최초 천주교 창설 주역)과 친해지면서 서학을 접했고, 천주교에 몸담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단지 서학에 심취했고 천주교도라는 이유 하나로 정치적 진로에 큰 장애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정약용의 한시 <혼자 웃다>를 읽고 있으면 묘한 안도감이 생깁니다. 신은 공평하다는 그 흔한 말이 가슴을 강타하면서 욕심의 발버둥 한 켠을 내려놓게 만든다고 할까요.
재산을 모아 먹고 살만하니 함께할 가족이 없다지 않습니까. 재주 있는 선비들은 그 재주를 펼쳐볼 기회가 없어서 재야에 머물고, 아내가 알뜰 살뜰 살아놓으면 서방이 남 좋은 일을 시킨다고 합니다. 보름 달 구경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구름이 더 낀다니... 이보다 어찌 인생살이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유배로 내 몰리는 환난과 시련에 분노하며 세상을 향해 할 말이 많았을텐데,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감내하면서 끝까지 가족을 챙긴 양반. 최악의 불행 속에서 무너진 자존심을 극복하며 자식의 앞일을 챙기는 아비. 그 외로움을 홀로 이기며 한시를 짓고 주역까지 집필한 위인...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다... 싶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 꼭 그 사람의 본관을 물어봅니다. 양반 쌍놈을 거론하자는 게 아니라 그 인터뷰이(interviewee)가 자신을 가능케한 조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어서입니다. 모르고 있을 수 있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가 달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대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조부모님뿐만 아니라 그 윗대 조상님이 겪은 사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합니다. 조상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는 사람과, 전혀 들어본 바가 없는 사람의 차이가 생활습관과 행동에서 미묘하게 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반-합이라는 변증법 논리의 삼단계가 철학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뇌는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발전과 진화를 지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조상의 과오를 알고 있다면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을 겪지 않게끔 할 터이고, 조상에게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 자부심으로 어깨가 살아있을 것입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합니다. 비단 스승과 제자만의 얘기가 아닐 것입니다. 제 주위만 봐도 자식이 부모보다 월등히 더 나은, 즉 외모와 학력과 성격과 직업 등이 부모를 능가해서 잘 자란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부모한테서 저토록 멋진 자식이…?"라는 놀라움으로 부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자식으로 인해 패밀리 벨류(family value)가 달라지는 예는 많고 많습니다. 수퍼마켓 아저씨가 세월이 흘러서 돈 잘 버는 김사장 부친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교편 잡는 교사가 그 지역에서 유명한 병원장 모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헌신과 인내는 가족이 화합하고 발전할 수 있을 거름이며, 자식들의 노력에 의해 패밀리 벨류는 얼마든지 격상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코 자식으로 덕 보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며칠 전에, 후배에게 “빨리 병원에 가서 시험관시술을 도전해 보라"고 다그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환갑만 넘어도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돈 많은 놈이나 없는 놈이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 있다고 해도 자식 덕 못 볼 수 있고, 돈 한 푼 못 얻어 쓰는 신세일 수 있겠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분명 클 것이다. 덩실덩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과 일가친척 틈에서 뒤늦게 열통 터지며 회한의 한숨으로 명(命) 재촉하지 말고, 미친 척 하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을 해 보라"고 말입니다.
완전한 행복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상이며, 최고입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듯이, 돈 아무리 많다한들 100% 만족하는 배우자 얻었다는 사람이 드물더군요. 다 좋을 수 없고 다 나쁠 수 없으니 측은지심으로 용서하고 봐주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선택이라고 하더이다.
누구의 인생인들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집집마다 고민이 없는 집이 없다지 않습니까. 사는 것이 팍팍하고 앞일이 캄캄해서 자식 안 낳으련다 하지 말고, ‘살면서 자식 아니면 웃을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말하며 살아봅시다.
너무너무 바쁘다고요? 자식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다고요? 자식들이 세대차이가 나서 부모와 대화를 하겠냐고요? 천만에.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정약용은 18년간 가족과 헤어져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교육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집집마다 스마트폰이 몇대씩이나 있는 마당에 편지쓰기가 어렵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요?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는 안된다"는. 왜냐하면 "이들은 끝내 은혜를 배반하고 의를 잊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재물에 대해 연연해하는 아들에게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이는 물고기와 같다. 절대로 애착을 가지지 말라"며 당부했다고 합니다. 뭔가 징...한 감동이 밀려오지 않습니까.
끝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서 집안(나주정씨) 후손들에게 당부했다는 네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문명 세계를 떠나지 말 것.
둘째, 독서에 힘쓸 것.
셋째, 재물을 나눠줄 것.
넷째 근(勤)과 검(儉)을 유산으로 삼을 것.
둘째, 독서에 힘쓸 것.
셋째, 재물을 나눠줄 것.
넷째 근(勤)과 검(儉)을 유산으로 삼을 것.
<끝>
관련기사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