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임과 동시에, 나라의 수도를 정해주고 왕이 자식이 없을 때 왕자를 낳을 왕비를 알려주어 대를 잇게 하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도 전해진다. 경주 김유신묘에서 출토된 12지 동물 중 돼지를 응용해 만든 납석제 돼지상.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이 2019년 새해를 하루 앞둔 31일 ‘2019 황금돼지의 해’의 의미를 정부 정책사이트 ‘정책 브리핑’을 통해 자세히 풀이했다.
      
천 관장은 “돼지띠는 육십갑자에서 을해(乙亥·木·靑), 정해(丁亥·火·赤), 기해(己亥·土·黃), 신해(辛亥·金·白), 계해(癸亥·水·黑) 등으로 5번 운행된다. 같은 돼지띠라도 오방색을 연결하면 그 색깔이 달라진다"며 “재운(財運)을 상징하는 새해 돼지해가 밝아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해는 기해년(己亥年)으로 ‘황색 돼지띠’이고 황색은 황금의 색이니 ‘황금돼지띠’라고 풀이했다.
     
천 관장은 “한국문화에서 돼지는 길상으로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물신(財物神)을 상징한다"면서도 “속담에서 돼지는 대부분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고도 했다. 다시 말해 돼지는 상서로움과 탐욕스러움의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갖춘, 모순적 등가성(矛盾的 等價性)을 지니고 있는 십이지의 열두 번째 띠 동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돼지를 길렀고 어쩌다 돼지꿈을 꾸면 재수 좋은 꿈을 꾸었다고 기뻐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돼지가 새끼들을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사진을 걸어 놓고 일이 잘되기를 빌기도 했다.  
    
상점에는 새해 첫 돼지날 상해일(上亥日)에 문을 열면 한 해 동안 장사가 잘된다는 속신도 있다. 죽어서도 돼지혈(穴)에 묘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
    
천 관장은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돼지를 부(富)와 복(福)의 상징으로, 돼지꿈을 재운(財運)과 행운(幸運)의 상징으로 여겨왔다"며 “많은 사람들이 돼지해를 맞이하며 행운과 재운이 따르리라 믿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천 관장에 따르면, 돼지는 신화에서 신통력을 지닌 동물이며 제의(祭儀)의 희생(犧牲), 길상(吉祥)으로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 등을 상징한다.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임과 동시에, 나라의 수도를 정해주고 왕이 자식이 없을 때 왕자를 낳을 왕비를 알려주어 대를 잇게 하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도 전해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고구려 유리왕편, 고려사(高麗史)의 고려세계(高麗世系)에 돼지가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과 고려의 수도 송악을 점지해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천 관장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산상왕(山上王) 편에서 산상왕은 아들이 없었으나 돼지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들은 보통 돼지가 아니라 하늘의 제사에 쓰이는 제물의 돼지이다. 제물로 쓰인 돼지는 신통력이 있고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使者)의 상징으로도 나타난다"고 했다. 희생에 쓰이는 돼지가 신기한 예언적 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집안 재물신의 상징 돼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천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에 희생으로 쓰여진 동물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희생으로 교시(郊豕)에 관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삼국사기 제사(祭祀)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해 “고구려는 항상 삼월 삼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한다"고 기록돼 있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십이월 납(十二月 臘)조에는 산돼지가 납향(臘享)의 제물로 쓰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천 관장은 “우리는 집에서 지내는 고사나 개업 같은 행사에는 의례 돼지머리를 가장 중요한 제물로 모신다. 이처럼 제전에 돼지를 쓰는 풍속은 멀리 고구려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역사 깊은 민속"이라고 했다.
     
신라말 최고의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은 금돼지의 자식이라는 고전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작자와 연대 미상의 ‘최고운전(崔孤雲傳)’으로, 최치원의 일생을 허구적 구성으로 형상화한 전기적 소설이다.
  
천 관장은 “상상의 동물인 용은 왕권의 상징이다. 그래서 용꿈은 태몽 중의 으뜸인데 장차 이름을 크게 떨칠 사내아이를 낳게 될 꿈이 바로 용꿈"이라며 “이에 비해 돼지꿈은 부의 상징으로 집안에 모시고 믿음을 바치던 ‘업신’이 현실의 재물신(財物神)이라면 돼지는 꿈속의 재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돼지꿈은 용꿈보다 한수 위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돼지꿈은 길조와 행운의 상징, 그 자체이며 다산(多産)까지 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스트리트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