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초라한 지도자이지만 한국과 베트남에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조현호 월간조선 기자
우리 시각으로 12월 15일 토요일 밤 9시30분, 우리의 눈과 귀는 베트남으로 향해야 할 것 같다. ‘베트남의 기적’을 일구고 있는 박항서(朴恒緖) 감독의 축구팀이 베트남 하노이 ‘미딘스타디움’에서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치른다. 상대는 말레이시아.
    
베트남은 지난 11일 원정으로 치른 결승 1차전에서 2대2로 비겼다. 홈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2차전에서 베트남은 0대0 또는 1-1로 비겨도 우승한다. 대회 규칙에 따르면, 원정 다득점이 원칙이다.   
 
베트남이 이번 대회 ‘스즈키컵’ 우승을 노리는 건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무적(無敵)의 ‘박항서’팀은 이번 대회에서 조별예선 4경기에서 연속 무실점을 기록, 총 7경기에서 ‘5승 2무’ 성적을 거뒀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를 하루 앞둔 14일 베트남 축구연맹(VFF)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며 “이번 스즈키컵에서는 꼭 정상을 차지하고 싶다"고 말해 강한 우승 의지를 나타냈다.
     
박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경기에 깜짝 카드가 있느냐'는 질문에 “깜짝 카드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선수를 기용한다. 선수들이 하나의 팀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조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관심과 격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감사하다. 초라한 지도자이지만 한국과 베트남에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내 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에서는 변변찮은 축구지도자였지만, 베트남에서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비결은 뭘까.
  
박 감독은 지난달 18일 발간된 ‘월간조선 12월호’에서 자신의 ‘매직’ 비결을 자세히 밝혔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전지훈련 차 한국을 잠시 찾았던 것이다. 인터뷰 기사를 읽다보면 박 감독의 품성과 축구를 대하는 자세 등을 알 수 있다.
      
박 감독은 성실하면서도 겸손한 축구 지도자이다. 그러면서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은 충분히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누구나 다 아는 ‘원칙’을 실전에서 ‘결과’로 보여주는 뛰어난 감독이다. 자신에 대해 “세계적 지도자가 되려면 멀었다"고 하지만 이미 그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다.
     
월간조선 인터뷰 기사의 주요 문답을 정리했다. 박항서 감독의 ‘명장(名將)’ 비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장원재 배나TV 대표다.
  
 
박항서 감독은 월간조선 12월호에서 "제 능력의 한계를 잘 안다. 베트남 선수들의 수준을 아시아에서 통하는 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제 역할이다"면서 "베트남을 세계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강팀으로 만드는 것은 제 다음에 오실 세계 수준의 지도자가 하실 일이다. 그분이 능력발휘를 잘하실 수 있도록 좋은 팀을 만들어서 넘겨 드리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월간조선
   
      
리더십1 : 책임은 나에게...“2002년 아시안게임 실패는 전적으로 제 책임"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습니까.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그 점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뒤돌아보면 다 시행착오죠. 그중에서도 2002년 월드컵 끝나고 부산아시안게임 감독으로 출전해 우승하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월드컵 4강 멤버를 이끌고 홈(부산)에서 동메달에 그친 건 누가 뭐래도 실패입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아요. 그때 주변 분들이나 당시 상황과 슬기롭게 지혜롭게 타협해 가면서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참았더라면 결과도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는 저도 젊은 나이였어요. 주위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며 조언해 주셨는데,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그분들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팀 운영을 100% 제 소신껏 한 것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조언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결단대로 밀고 나갈 배짱도 부족했습니다. 2002년 아시안게임 실패는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리더십2 : 집중 또 집중...“一喜一悲하지 않아, 축구에만 집중"
    
―베트남에서는 소신껏 일하고 계십니까.
 
“하하, 일단 말을 100% 다 알아듣는 건 아니니까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SNS나 언론 기사를 소소한 것까지 다 찾아서 읽었습니다. 읽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고 눈이 가더군요.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물론, 큰 틀에서의 기사나 여론 동향은 저에 대한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이동준 대표(저와 베트남 축구를 연결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와 통역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핵심은 베트남 부임 후 제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급격한 기복(起伏)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으니 축구에만 집중합니다."
 
리더십3 : 無欲...“나 자신을 내려놓자"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혹시 나이와 관계가 있습니까. 월드컵 우승팀 감독 중에는 60대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축구 지도자의 정점(頂點), 말하자면 인생의 모든 면을 녹여낼 수 있는 연령대가 그때가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베트남 부임 후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내려놓자는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부임했지요. 그가 직전 월드컵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은 세계적인 명장(名將)이잖아요. ‘축구에 관한 한 이분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몇 수 위 전문가다’라는 생각을 스태프들이 다 공유(共有)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도 코칭스태프 사이에, 선수들과 의견충돌이 있었거든요. 그때 수석코치 입장에서 관찰을 해 보니, 문화적 이해가 부족해서 생기는 충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은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니 내가 노력하면 이 부분은 빨리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견충돌을 줄일 수 있다면 팀을 파악하고 발전시키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노이로 갔습니다."

리더십4 : 현지에 적응하라...“제 자신을 베트남 현지화하자고 결심"
 
―베트남에서 일하는 한국인들, 아니 모든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이네요.
    
“베트남 부임 당시 저는 정말 절실했습니다. 한국에서는 40대 젊은 지도자들을 선호하는 분위기고, 제 동년배들도 거의 다 지휘봉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내 축구인생의 마지막 직장이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빨리 제 자신을 베트남 현지화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노력을 하면 길이 보입니다. 내려놓으면 됩니다."
    
리더십5 : 정확한 현실 진단...“선수들 하나하나 정밀 관찰 통해 전략 만들어"
  
―박항서가 관찰한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제 감독 데뷔전이 성인 대표팀 경기, 2019 아시안컵 예선 아프가니스탄전이었습니다. 부임 후 2일 만에 치른 경기죠. 그때는 아무 정보가 없었어요. 딱 하나, 베트남 선수들이 ‘체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것이 다였습니다. ‘체력’도 분야가 많잖아요? 지구력, 순발력, 스피드, 점프력 등등. 상체와 하체의 근력이나 밸런스, 심박동수도 중요하고…. 그런데 어느 부위가 얼마나 약한지를 알려주는 수치나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부상 이력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요. 2002년 히딩크 감독 부임 전 한국 축구도 그랬습니다.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이 경험과 감이 그렇다는 이야기만 있었습니다. 그 경기는 4백으로 나섰는데 0대0으로 비겼어요. 경기 전날 미팅 때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가장 익숙한 전술이라기에 그대로 나섰다는 얘기였습니다. 신체적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베트남이 뒤질 이유가 없는데, 대등하거나 혹은 약간 밀리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저는 확실한 소득을 얻었습니다. 4백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죠. 베트남 선수들의 능력은 3백일 때 최대치가 된다고 봤습니다."
“적어도 동남아권에서는 베트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체력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혹시 체격과 체력을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70분 이후 실점이 많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데, 경기를 지켜보니 팀 전체가 체력이 방전(放電)되었을 때 나오는 문제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순발력, 민첩성, 스피드는 수준급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부분만큼은 베트남 선수들의 능력이 한국 선수들보다 나은지도 모릅니다. 중국 U-23 아시아선수권대회 때까지는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으니까 선수들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관찰하며 능력을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상한 작전이 변형 3백이죠." 
   
리더십6 : 역발상...“이 작전 ‘먹히는’ 것을 보고 선수들 스스로 확신 가져"
       
― 베트남이 사용하는 3-4-3은 2002년 한국의 전술에 비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겁니까.
      
“베트남의 3-4-3은 ‘적극적 수비’에 중점을 둔 전술이 아닙니다. 매우 공격적인 전술이죠. 볼을 소유하면, 중간 측면의 두 선수가 안으로 들어오며 공격수가 됩니다. 순간적으로 공격수의 숫자가 5명으로 늘어나는 겁니다. 3백은 수비수가 아니라 미드필더 출신입니다. 저희 팀에서 볼 통제력이 가장 좋은 선수들이죠. 이들에게 작전 개념을 설명하고 포지션 변경을, 정확히 말하면 플레이하는 지역을 바꾼 이유, 제가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미드필더인 자기들이 최후방으로 내려서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더군요. 첫 경기 대 호주전에서 이 작전이 ‘먹히는’ 것을 보고 선수들 스스로가 확신을 가졌다고 봅니다. 이 최후방 3명은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입니다. 통제력이 좋으니까 공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어이없는 실수가 없는 겁니다. 공을 잡으면 짧게 전방으로 볼을 이어 주며 상황을 전개할 수도 있고, 상대의 뒷공간이 비어 있으면 공을 끊었을 때 전방으로 단번에 롱볼을 날리기도 합니다. 같은 롱볼이라도 통제력이 있기에 이른바 패스줄이 살아있는, 다시 말해 의도한 지점으로 공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있어요. 중앙 미드필더 2명은 수비가 주요 임무입니다. 상대가 밀고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이죠. 몸싸움도 많이 해야 하고, 공격에도 나서야 합니다. 우리 팀에서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자리입니다. 이들이 버텨 줘야 공격 시 측면 미드필더들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미드필더들이 안으로 조여 들며 공격수가 5명으로 늘어나면, 그러니까 중원에서 숫자의 우위를 확보하면 그때는 선수단 전원이 빠르게 이동하며 짧은 패스로 상대 진영을 야금야금 파고 들어갑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순발력, 민첩성, 유연성은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이라고."
“과거 같으면 최종 수비수로 뛰어야 하는 선수 2명을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겁니다. 실질적으로 이곳이 수비진의 본영이죠. 다만 부여하는 역할은 다릅니다. 전통적인 수비수는 스토퍼(stopper), 스위퍼(sweeper)로 불리잖아요? 두 중원 미드필더가 상대의 중앙 침투를 저지하는 것은 맞아요. 다만 공이나 사람 가운데 하나의 통행은 허락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막으면 골은 안 들어가니까요. 완벽하게 공이나 사람을 쓸어내 ‘상황종료’까지 가면 좋겠지만, 상대가 가진 공의 소유권을 50-50의 상태로 만들기만 해도 ‘임무 완수’라고 했어요. 후방에는 볼의 통제력이 좋은 미드필더 출신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리더십7 : 자신만의 강점 강화...“베트남 선수들만의 장점을 바탕에 깔고 설계"
   
―그렇다면 ‘다른 팀들은 왜 베트남식 3-4-3을 쓸 수 없는가, 베트남의 공격스타일을 알면서도 왜 계속 당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전술이 베트남 선수들만의 장점을 바탕에 깔고 설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팀들이 활용할 수 없습니다. 기동력과 엄청난 활동량을 갖춘 측면 미드필더 2명, 순발력이 좋고 급발진이 가능한 공격수 3명, 무엇보다도 스피드와 민첩성이 뛰어난 11명이 없이는 전 세계 어느 팀도 베트남식 3백을 구사할 수 없어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이 전술을 따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리더십8 : 先단점파악·後신전략 구축...“해결 불가능한 상황, 그래서 새로운 전술 만들어"
       
―베트남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은 전술 이해력과 패스 능력입니다. 패스 중에서도 짧은 패스는 괜찮은데, 방향을 전환하는 큰 패스에 약합니다. 세계 수준에서 경쟁하려면, 패스 타이밍도 더 빨리 가져가야 합니다. 아직은 경기장 전체를 살피며 플레이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유소년클럽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선수들은 이런 약점도 많이 극복했습니다."
 
“베트남 리그에는 신장이 183cm가 넘는 골키퍼가 없습니다. 수비수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신장이 큰 골키퍼와 중앙수비수를 찾았더니 처음엔 큰 선수만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수 포지션은 아시아 수준의 경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주변을 설득했지요. 적어도 골키퍼와 중앙 수비수 2명은 체격이 큰 선수로 뽑아야 한다고.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장신이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우월한 피지컬이 아니라는 거죠.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술을 만든 겁니다. 상황에 따라, 현실적 조건에 따라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거죠. U-23 대회 때 어느 정도 각오는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세트피스 상황에서 실점하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연습했습니다. 문제는, 준비는 열심히 했는데 선수들이 겁이 나서 실행을 못하는 겁니다. 사실은 베트남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친선 국제경기인 비나컵 대회 때 한 번 사용했어요. 너희들이 편할 때 써 보라고 주장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수비수 한 명이 약속된 움직임을 깜빡하고 자기 위치에서 뛰어나오지 않아 계획이 어긋나 버렸어요. 다행히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거의 골을 먹을 뻔했죠. 아시안게임 본선에 가서도 계속 연습은 많이 했는데 겁이 나서 못 썼습니다."
    
리더십9 : 치밀한 작전...“같은 작전 두 번 통하지 않아"
 
 ―아시안게임 때는 세트피스 실점이 없었습니다. 어떤 변화를 준 겁니까.
 
“선수들에게 맨투맨을 좀 더 철저히 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골대 안쪽에 세우던 수비수를 앞에다 세웠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가 공중볼을 슛으로 연결하면 골대 안에서 수비수가 공을 막을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봤어요. 장신 수비수가 없는 우리 팀 입장에서, 상대의 슛은 타점도 높고 이마에 정확하게 갖다 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슛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골대 양 옆에 서서, 라인 위에서 공을 걷어내는 최후방어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공이 날아올 만한 위험 지역에 수비수를 한 명 배치하고 중앙 포인트에 한 명을 더 세워 상대 선수가 점프할 공간을 줄이자고 했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집중하고 실점을 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 그러니, 공격 전환의 속도를 늦추자’고 했죠.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4백, 즉 지역방어로 가는 겁니다. 역습 가능성을 스스로 줄이는 건 불이익이지만, 대신 슛을 허용하는 확률을 줄인 거죠. 그 정도가 지금 우리 선수들을 활용해서 구사할 수 있는 최고치라고 봅니다."
  
“지금은 모든 국제경기가 다 공개되는 세상입니다. 분석하려고 들면 상대는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금방 찾아낼 수 있어요.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선수들의 능력을 고려해야 하니까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저 팀의 장점, 단점이 무엇인지는 다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작전은 두 번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베트남도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연구하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술인지는 영업비밀(?)이라 말해 줄 수 없어요." 
     
리더십10 : 精神一到何事不成...“어떤 경우든 당당하게"
      
―‘2승으로 16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경기를 전력(全力)을 다해 치를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이 경기에서 베트남은 주전 선수 하나를 부상으로 잃었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이번 1승이 베트남이 일본에게 거둔 사상 최초의 승리입니다. 베트남 축구는 이번 아시안게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도 중요합니다. 친선경기가 아니라,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일본을 이겨 봤다는 경험은 베트남 선수들에게, 그리고 베트남 축구계 전체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당장 내년 아시안컵에서 일본을 만날 수도 있어요. 저는 우리 선수들이 적어도 경기 전에 위축이 돼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없기를 바랍니다. 전 일본과의 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중동 축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일본, 태국에는 뭔지 모르게 밀린다는 위축된 마음으로 경기를 해요. 역대 전적(戰績)도 그렇고. 이것을 깨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 경기 이겼다고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언제가 되었든 우리가 일본을 다시 만난다면 적어도 예전보다는 더 나은 마음으로 자신 있게 플레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 다음 상대를 고르려고 일부러 비기거나 지는 것은 좋은 작전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시아 축구팬에 대한 예의도 아니죠. 지난 월드컵 때도 조별리그 이후의 대진(對陣)을 생각하고 일부러 느슨하게 경기를 한 안티 풋볼(anti-football)이 문제였잖아요. 베트남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어떤 경우든 당당하게 갑니다. 그것이 베트남 정신입니다."
  
리더십11 : 신념 확립...“베트남 정신을 잊었나?"
  
―아까 말씀하신 베트남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U-23 대회 때 조별리그를 통과하니 언론에서 ‘베트남 정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베트남 정신’이 무엇인지 정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분임토의 후 선수들 스스로가 단결심, 자존심, 영리함, 불굴의 투지라고 정리를 하더군요. 제가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고 했습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며 목표를 제시하면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구호가 ‘우리는 베트남이다’입니다. 선수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면 저는 딱 한마디만 합니다. ‘베트남 정신을 잊었나?’ 그러면 선수들의 플레이가 바로 달라집니다. 이제는 패배의식도 없어졌습니다. 중국 대회 때 조별리그 통과하고 3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렀습니다. 그런데도 체력적으로 상대 팀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죠.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 베트남 축구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본인들 스스로가 확인한 겁니다. 그러니까 팀 전체의 자신감이 상승하더군요.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베트남 정신을 강조하는 건 선수들의 패배감,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겁니다. 우리 선수들의 체격이 작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작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 눈 오는 날 결승전을 했죠. 모두가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즈베크가 더 추운 나라고 눈에도 익숙하니 우리가 불리한 건 사실이었죠. 하지만 경기 전날 선수단 미팅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데 그러면 신장이 큰 선수들은 바닥이 미끄러운 상태라 턴 동작이나 중심이동에 훨씬 불리하다. 짧은 볼로 연결하면 우리가 유리하다. 눈 때문에 베트남이 경기에서 졌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다. 그건 핑계다. 나는 핑계는 듣지 않겠다. 불리하다고 위축되지 않고, 핑계를 대지 않고 당당하게 맞붙는 것이 베트남 정신이다. 우리는 베트남이다.’"
   
리더십12 : 작지만 강한 꿈...“이 목록에 꼭 베트남 추가하고 싶어"
 
―앞으로 베트남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제 능력의 한계를 잘 압니다. 베트남 선수들의 수준을 아시아에서 통하는 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제 역할이죠. 제가 세계 수준의 감독은 아니지 않습니까. 베트남을 세계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강팀으로 만드는 것은 제 다음에 오실 세계 수준의 지도자가 하실 일입니다. 그분이 능력발휘를 잘하실 수 있도록 좋은 팀을 만들어서 넘겨 드리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제가 가진 축구의 지식과 노하우를 베트남 축구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아직 축구 시스템이 미비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도 경제발전과 축구 시스템 확립이 같이 이뤄졌잖아요.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지만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축구 시스템도 빠르게 확립되기를 기대합니다. 베트남 축구계의 가장 큰 문제는 유소년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점입니다. 몇 개 구단은 독창적으로 유소년 클럽을 아주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번 두 대회에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유소년 클럽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지금의 규모를 가지고는 아시아권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기를 수 없습니다. 일단 선수 숫자가 너무 적어요. 유소년 시스템의 개선이 없이는 장기적으로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난 30년간 200개가 넘는 FIFA 회원국 중에 자국 리그를 발전시키거나 독창적인 선수육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세계축구 변방으로부터 탈출한 나라는 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목록에 꼭 베트남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베트남 정신’이 있으니까요."
    
박항서 매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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