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10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진=김광두 페이스북 캡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뮐세. 샘이 깊은 물은 가믐에 아니 그치고.’ 우리 선현들의 지혜다. 요즈음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뿌리를 튼튼히 하지 않고, 샘을 깊이 파지 않고, 바람막이나 설치하고 양수기나 동원하려한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오래 버틸 수 없다. 정치는 짧게 보려는 구조적 성향을 갖는다. 그러나 경제는 길게 보아야한다. 내년엔 더 강한 외풍이, 더 지독한 가뭄이 올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려고 이러고 있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글이다. 글쓴이는 다름 아닌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헌법기구이다.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고, 부의장은 원로 경제학자 김광두 교수다.
        
김광두 부의장은 국민경제자문회의 실질적 책임자이다. 김 부의장은 10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앙일보 사설(26일자)을 인용하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관련해 “오래 버틸 수 없는 임시방편"이라고 썼다. 중앙일보 사설 제목은 ‘경제 위기 다가오는데 청와대·정부에만 위기의식이 없다’였다.
    
사설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컨설팅회사 매킨지는 5년 전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에 비유했다. 이 회사가 얼마 전에 “끓는 물의 온도가 5년 전보다 더 올라갔다"고 경고 수위를 높였다. 위기에 둔감한 요즘 한국 경제의 모습과 닮아 있다.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6%였다. 반도체에 의존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수출이 그나마 버텨줬고, 정부 소비에 기대 간신히 현상유지는 했다. (중략) 본격적인 경기침체의 초입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증시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증시가 연일 큰 폭으로 하락하며 어제까지 사흘 연속으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1월 이후 21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 행진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중략) 증시 침체는 미·중 무역 갈등과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기 둔화 등 대외 요인이 크다. 하지만 우리 증시가 해외 증시의 오르내림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는 미·중 무역 갈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곳 중 하나로 한국을 꼽고 있다. 이미 한국을 ‘중화권 경제’로 분류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중략) 증시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투자자는 한국 기업의 미래를 보고 냉정하게 주판알을 튕긴다. 우리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 결국 중요하다는 얘기다. 대표 기업의 수익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 지 오래다. 어제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이 3000억원을 밑도는 등 2010년 이후 최악의 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조선에 이어 자동차 등 핵심 주력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향후 먹거리는 잘 보이지 않는데 정책 리스크는 갈수록 높아진다는 걱정과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기업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을 재계의 이기주의나 엄살로 치부해선 안 된다. 당장 정부는 유류세 인하나 단기 일자리 같은 대증요법만 찾고 있다. 단기 선심성 정책으로는 냄비 속의 개구리를 결코 살릴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온 사방에 경제 위기의 불길한 조짐이 어른거리는데 청와대와 정부에는 전혀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김광두 부의장이 중앙일보 사설을 인용한 것은 자신도 이에 동의한다는 의미다. 김 부의장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뮐세’라는 용비어천가 구절을 인용하면서 "정부 경제정책 입안자들이 이를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의장은 “경제는 길게 보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광두 부의장은 서강대 석좌교수로 있다가 작년 5월 대선(大選)을 앞두고 문재인 캠프에 참여해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문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그의 '경제관'이 현 정부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 부의장은 소셜미디어나 외부 칼럼을 통해 현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비판해왔다. 지난 8월 정부가 일자리 예산을 확대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참으로 안이하고 한가하다"고도 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면서도 현 정부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그에 대해 특별히 싫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자문기구'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것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차원인 듯하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12월경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체회의를 앞두고 있다. 11월에는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현장 실태를 조사해 발표하기로 했다. 김광두 부의장에게 무게가 실릴 경우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해온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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