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4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을 했다며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북한 권력자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향해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닌 '민족 이익 당사자'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2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지난해 있었던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전쟁의 문 어구로 다가서는 엄중한 정세를 돌려세우고 조국통일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출발을 선언한 대단히 의미가 큰 사변"이라고 평가하며 "(온 민족은) 북남관계가 끊임없이 개선되어나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측 보수세력은) 북남관계를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려보려고 모지름을 쓰고, 미국은 남조선 당국에 '속도조절'을 노골적으로 강박하며 북남합의 이행을 저들의 대조선제재압박정책에 복종시키려 책동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김정은, 당 및 국가지도기관 성원들과 촬영...북한 국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은이 4월 12일 새로 선거된 당 및 국가지도기관 성원들을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며 노동신문이 4월 13일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출처=노동신문

 

김정은은 또 "이로 말미암아 북남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는가, 아니면 전쟁의 위험이 짙어가는 속에 파국에로 치닫던 과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조선당국과 손잡고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온 겨레가 한결같이 소원하는 대로 평화롭고 공동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려는 것은 나의 확고부동한 결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둔다"고도 했다.
   
이어 "조성된 불미스러운 사태를 수습하고 북과 남이 힘들게 마련한 관계개선의 좋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것이 평화와 통일의 의미 있는 결실로 빛을 보게 하자면 자주정신을 흐리게 하는 사대적 근성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의존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판문점상봉과 9월 평양상봉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와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허울만 바꿔 쓴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유지된다면 "북남관계에서 진전이나 평화번영의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때늦기 전에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김정은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직접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북측의 공개적 요구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협력사업에 대한 제재면제 조치를 건건이 협의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내에서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데 운신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워싱턴 한미(韓美)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의 강경한 입장만 확인한 상황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 여부에 대해 "적절한 시기가 되면 큰 지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같은 미국의 입장에 김정은도 불만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의 운명과 전도를 걸고 북남관계개선과 평화통일에로 향한 역사적 흐름에 도전해나서는 미국과 남조선보수세력의 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야 한다"면서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의향이라면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1박3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문 대통령의 향후 발걸음이 더욱 무거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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