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당시의 모습. 사진=뉴시스

 

미북(美北) 협상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양쪽으로부터 제3자로 몰리는 형국이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문 대통령의 신뢰성을 문제삼고 “중재자로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에 중재안 마련을 위해 장고(長考)에 들어갔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아닌 미국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1~2차례의 추가 정상회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월 17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내린 문 대통령의 향후 액션플랜(Action plan·실행계획)에 대한 구상을 부분적으로 공개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향후 하노이 회담의 긍정적 효과는 극대화시켜나가면서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moratorium·유예)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며 "남북이 그동안 추진해 온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의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위 관계자는 "이런 남북의 노력이 북미 비핵화 협상을 위한 매우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믿고 있다"며 "이런 노력을 더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협상이 지연되는 것이 장기화가 될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미국도 생산적인 회담을 강조하면서 실무협상의 조기 재개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남북미 3국 정상간의 유대·신뢰·대화를 계속 유지해나가야 한다"며 "남북미 3자 정상 간 일종의 '삼각 구도'의 협력구도를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이번에는 남북 간 대화의 차례가 아닌가 보여진다"며 "우리에게 넘겨진 바통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이러한 구상은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양측과 접촉하며 회담 결렬 상태를 복기하고, 처음 나온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까지 지켜본 뒤 공개한 것이라 향후 문재인 정부의 행동 플랜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 3월 신남방정책 일환으로 동남아시아국가를 방문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캄보디아 국왕 주최 국빈만찬에서 답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청와대는 그동안 2차 미북정상회담의 결렬 과정을 정밀하게 복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전략적 판단과 문 대통령의 추후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액션 플랜'(Action plan·실행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혀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선 2차 미북정상회담의 결렬에 따른 미북 양측이 떠안게 된 득실에 대한 나름의 평가에 대해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저희가 볼 때 미국은 대체로 실보다는 득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은 합의 무산으로 인해 자국내 정치적으로 부담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라고 본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확인했다. 앞으로 협상을 하는데 (주도권을 확보한 것)으로 저는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거꾸로 북한이 이번 합의 무산으로 경험한 '내상(內傷)'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면에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회담 결과가 상당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많은 기대를 하고 60시간 이상 기차 여행을 했음에도 빈손으로 귀국한 것에 대한 많은 국내 정치적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추정해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소위 미국의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전략에 대해서는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판단하고 있는 효과적인 협상 전술에 대한 개괄적인 구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우선 '완전한 비핵화'라는 포괄적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토록 북한을 견인해 내야 한다"며 "그런 바탕 위에서 '스몰 딜'을 '굿 이너프 딜'로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핵화의 의미있는 진전을 위해서는 한 두 번의 연속적인 '조기 수확(early havest)'이 필요하다"며 "이런 것을 통해서 상호 신뢰구축과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최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서 확인된 한 번의 비핵화 담판을 통해서는 원하는 것을 한 꺼번에 얻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교훈을 상기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접점이 마련될 수 없다는 북한측 입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물론 이 과정에서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과정과는 동떨어진 분절된 방식의 단계적 협상, 소위 말하는 '살라미식' 협상은 경계해야 한다"며 미국이 어떤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는 큰 틀에서 1~2차례 미북정상회담을 거쳐야 한다는 것으로 우선 '비핵화 입구'를 찾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첫 회담에서는 비핵화 입구와 출구를 명시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두 번째 회담을 통해서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조건들을 맞춰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고위관계자는 '비핵화의 출구와 관련해 백악관이 갖고 있는 입장과 거리감이 있다'는 지적에 "한미 간 긴밀한 대화를 유지하고 있고, 비핵화의 최종 단계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에 대한 기본 인식은 한미 간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이제는 남북 간 대화의 차례가 아닌가 보여진다"고 한 것도 한 차례 이견으로 돌아선 미북정상의 직접적인 만남보다는 남북→한미→북미 정상회담의 수순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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