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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근로자를 기준에 두고 ‘생산성 향상’을 말하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하여 생산량을 2배 늘리는 것은 기계 설비 하나가 공장에 들어올 때 가능한 상황이다. 사진=뉴시스DB |
산업혁명이 키운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까? 기업은 인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조직해서 돈을 번다. 기업에 특별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법이 있다면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다. 기업은 ‘직원들의 시간’을 특정한 가격에 산다. 특정한 가격을 급여라고도 하고 연봉이라고도 한다. 기업은 경영자를 통해 이렇게 모은 ‘시간을 조직’한다. 경쟁 기업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나 제품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배정하기도 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데 시간을 배정하기도 한다. 또한, 제품을 알리는 데 시간을 배정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시간’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이런 혜택을 가장 크게 거둬간 곳은 대기업이다. 국가는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대기업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이것을 가장 잘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대기업은 일자리를 대규모로 만들고 유지한다.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면 국가는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근로자에게도 급여에 세금을 부과한다. 급여를 받은 근로자가 생활하며 지출하는 모든 곳에도 세금을 부과한다. 국가는 국가를 유지하는 데 세금을 쓰고,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세금을 쓰고, 급여가 아주 적거나 없는 국민에게 복지비로 세금을 쓴다. 그런데 기업이나 일자리가 줄어 세금이 줄면 국가는 어떻게 될까?
기술혁명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기술이 일자리를 해체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다만, 경제성장이 해체되는 일자리 문제를 덮고도 남았기 때문에 해체되는 일자리는 보이지 않고 증가하는 일자리만 보였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일자리 해체’는 ‘생산성 향상’에 묻혀 설명되지 않았다.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게 되면 생산성이 2배 향상된 것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계속되어 일자리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2배, 3배 더 만들거나, 새로운 일자리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인구의 증가도 소비를 키워 경제성장에 한몫했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생산성이 높아져도 사람이 더 필요했다.
우리나라 명목GDP는 1970년 82억 달러에서 2018년 16,198억 달러로 커졌다. 1970년을 기준으로 5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GDP가 약 200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경제활동인구는 1970년 1,006만 명에서 2018년 2,789만 명으로 증가했다. 명목 GDP가 200배 성장한 약 50년 동안 경제활동인구는 약 1.8배 느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 요인, 제품의 부가가치, 인구의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생산성 향상은 엄청났고 성장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근로자를 기준에 두고 ‘생산성 향상’을 말하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하여 생산량을 2배 늘리는 것은 기계 설비 하나가 공장에 들어올 때 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공장 전체가 순식간에 자동화되거나 대형 할인점의 계산, 재고관리, 진열업무가 순식간에 자동화되어 대부분 사람이 필요 없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금까지 공장이라고 부르는 설비와 인력 중심의 조립 공정은 이제부터 설비와 로봇 중심의 자동화 공장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전 세계가 성장이 둔화하면서 더 많이 만들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은 이미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깰 때
성장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소비하기 게임’이다. 다른 나라에 팔아 소비하도록 하건, 국내에서 다 소비하던, 만들어진 것들을 소비하는 게임이 성장이다. 전년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같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많이 소비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할 다른 사람이 새로 생겨나 소비가 느는 것이다. 후자는 인구의 증가와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선진국에는 인구가 정체하거나 줄어들기 시작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도 2020년을 기점으로 인구의 증가가 멈춘다. 고령화마저 진행되어 인구의 정체는 인구의 감소와 다름없다.
이제 성장하려면 소비가 느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만 소비할 수 있다. 소비가 늘려면 일자리가 유지되면서 소득이 늘거나, 소득이 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일자리가 증가해 소비할 돈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기술혁명은 일자리를 제로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이미 진입했다. 2019년 현대자동차 외부자문단은 기술혁명으로 인력의 40%를 줄이지 않으면 회사의 생존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에 노사는 2025년까지 20%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기술의 진보는 자본을 고도로 유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생산성을 계속 올려 노동수요를 급속하게 줄인다. 지금부터 세계는 극한의 생산성이 만드는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의 소용돌이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은 미국에서 일자리의 47% 정도가 10년에서 20년 사이에 크게 위협받고, 20%는 중간 정도의 위협에 처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직종은 3만 개 이상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직종은 1만2천여 개로 미국의 세분되고 분화한 직종의 1/3 수준이다. 우리나라라고 피해갈 수 없는 일이고, 무엇보다 직종의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실업이 미국보다 더 일찍, 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양적으로도 산업의 구조가 치우친 우리가 시스템 면에서 충격을 받기 훨씬 쉽다. 한국지엠이 철수한 군산, 조선업 불황이 이어진 울산과 거제를 지역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가 겪게 될 미래라고 생각해야 한다.
생존과 추락의 갈림길, 공장
그렇다면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는 개인, 기업, 국가 모두의 문제이다. 다만 기업은 생물보다 더 생물 같은 존재여서 생존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 해결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이런 상황이 아닐 때도 항상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따라서 개인과 국가만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다. 개인은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거나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국가는 국가 전체에 일자리가 최대한 유지되게 해야 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속도를 완충해야 한다. 2020년부터는 국가 간 일자리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이 일자리는 세금이고 복지이고 생존의 방법이다.
삼성은 중국에 스마트폰 공장이 없다. 삼성은 2019년 9월 광둥성廣東省 후이저우惠州 공장을 마지막으로 폐쇄하면서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베트남이나 인도에 비해 비싼 임금을 지급하면서 시장마저 사라져버린 중국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중국 내에서 중국인을 위해 존재하던 삼성의 일자리가 베트남과 인도의 일자리로 변한다. 기업은 이렇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이동한다.
이런 문제에 애플Apple은 어떻게 대응할까? 애플의 주문을 받아 주문자 상표부착생산OEM을 주로 하는 폭스콘Foxconn과 페가트론은 대만의 전자기기 회사이다. 고용인력 규모는 한 회사당 120만 명 이상으로 중국에 대규모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높아진 임금과 주문량 불안정으로 자동화 공장 건설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도 중국을 떠나 인도로 가거나, 공장을 하나씩 자동화하여 2025년에는 전체 공장의 90% 이상을 자동화하려고 한다.
기업에 인건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했던 인건비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자동화 공장은 공장용지, 원자재, 에너지, 세금, 물류, 시장 등이 중요한 요소로 새롭게 부각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인건비가 덜 중요해진 자동화 공장을 유치하려 한다면 무엇이 기업에 유인책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공장용지, 원자재, 물류, 시장은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기 어렵다. 남은 것은 에너지 가격과 세금이다. 앞으로 10년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사라지는 일자리를 그나마 품고 있으면서 세금도 내는 공장이 없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이미 우리는 그 갈림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