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섬에 위치한 이라클리온시(市) 주민 50만명은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인 엘 그레코의 초기작품 '그리스도의 세례'를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했다. 사진=구글
-'그림보고 자빠지자'편 마지막회-
     
스페인 서부에 살고 있는 한 남자는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소장품을 감정해주는 행사에 오랫동안 집안에서 먼지를 쓴 채 보관되어 있던 가로 23.7cm, 세로 18cm의 목판에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왔다.
  
19세기 중반부터 그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던 그림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봉투에 담아 온 그 그림은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152만1000달러, 우리 돈으로 16억8000만원에 낙찰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매너리즘 미술의 거장 엘 그레코(El Greco·1541~1614)의 초기작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작품이다. 엘 그레코가 고유의 스타일을 개발하고 있던 특별히 의미 있는 시기의 희귀작이라고 크리스티는 평가했다.
   
특이한 점은 그 그림을 낙찰받은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온시(市)였다. 엘 그레코가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지만 스페인 출신으로 오해받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크레타의 주민들 50여만명이 합심해 거액의 작품 구입비를 모금한 것이다.
    
크레타에서 태어난 엘 그레코의 원래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 토코 폴로스로 베네치아로 건너가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 아래서 수업을 하고 훗날 스페인 톨레도로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의 별칭 엘 그레코는 '그리스인(人)'이란 의미다.
                        
그런데 크레타섬 주민들은 이전에도 엘 그레코의 작품을 사들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나이 산 풍경’이란 작품이다. 크레타섬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엘 그레코'. 그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5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림을 사들였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만약 우리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었다면 예를 들어 '단원 김 홍도'의 그림을 국가의 이름으로 구입하기 위해 과연 얼마를 기부할 수 있을까? 나의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닌 박물관에 모셔 둘 그림을 사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부할 수 있을까?
  
일찍이 백범 김 구 선생은 "나의 소원"이란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크레타 주민들은 자신들이 모은 돈으로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화가의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경매에 참석했다. 그리고 낙찰받았다.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대한민국이 가진 문화의 힘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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