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입양인인 앤드류 머피(한국명 장태수) 씨는 지난달 30일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양부모인 아버지 스콧 머피(우측)와 어머니 리엔 머피(좌측) |
-- 미국서 자란 뒤 4년 전 귀국해 친모 찾고 한국 여성과 결혼
-- "경제성장 후에도 해외 입양 1위 안타까워…싱글맘 배려했으면"
-- "경제성장 후에도 해외 입양 1위 안타까워…싱글맘 배려했으면"
타지로 나간 가족들이 모두 ’고향 앞으로’ 달려가는 설은 모두가 반기는 가장 큰 명절. 모국을 찾아온 해외 입양인에게는 ’가족의 부재’로 인한 설움을 어느 때보다 진하게 느끼는 시기다.
이런 가운데 누구보다 행복한 설을 맞은 해외 입양인이 있다. 주인공은 지난달 30일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린 앤드루 머피(한국명 장태수·28) 씨.
미국으로 입양돼 성장한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친어머니도 찾으려고 2012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연세대와 부산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꿈에 그리던 친모도 만났다.
며칠 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머피 씨는 자신의 삶을 "시작은 불행했으나 과정은 행복했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저는 행운아입니다. 해외 입양으로 좋은 양부모를 만났고, 지금은 모국에 살고 있고, 더욱이 친어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꿈꾸던 가정을 갖게 됐거든요. 해외 입양은 상처지만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다 축복입니다."
그는 갓난아이 때 홀트아동복지회로 보내졌고 미국 켄터키주의 스콧 머피·리엔 머피 부부에게 입양됐다.
당시 아이가 없던 어머니는 천주교 신부의 권유로 입양을 결심했는데 마침 시아버지가 6·25 전쟁 참전용사였던 인연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아이를 받아들이게 돼 인연이 이어졌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마을에서 성장한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남과 다른 입양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친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호기심을 품게 됐다.
켄터키주의 루이빌대에서 정치심리학을 전공하고 네바다주립대에서 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2년간 교사로 근무하고 나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선 캠프에 합류해 1년간 캠페인 활동을 벌인 다음 2012년 1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더 늦기 전에 제가 태어난 나라의 역사·문화·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희망도 있었죠. 양부모님도 한국에 가겠다는 말에 서운해하지 않고 응원해주셔서 용기가 났죠."
그는 한국 생활 첫해에 방송국 프로그램을 통해서 친어머니를 만났다. 모자의 감격스러운 해후에 대해 그는 "감정이 너무 북받쳐 올라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이 안 나지만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했다"며 "어머니가 음식을 잔뜩 장만해오셔서는 그 자리에서 따듯한 밥상을 차려주었던 게 가장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4년간 한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그는 "한국은 안전한 나라고 사람들은 정이 많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인에게 미국은 경제와 군사 대국 등 강대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입양인으로 자란 제가 볼 때는 인권과 사람을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가난하거나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 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정책을 펼치고 있죠. 저 역시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 혜택을 더 많이 받았거든요."
머피 씨는 "세계 경제 10위권의 나라인데도 여전히 ’해외 입양 수출국’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탓"이라며 "입양인들이 모국에 한결같이 바라는 것은 싱글맘이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과 이들을 배척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으로 보낸 해외 입양인은 지금까지 22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매년 2만여 명의 입양인과 양부모가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그는 "한국에 체류하는 입양인이 한국말이 서툴거나 우리 문화를 모른다고 이방인 취급받을 때 가장 서럽다"면서 "친부모의 외면, 입양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 등으로 상처를 받아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며 출국하는 이들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저는 다른 입양인에 비해 좋은 한국 분을 많이 만나 한국 생활에도 잘 정착했고 지금의 짝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세월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잘살게 됐으니 아픔과 한이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 다시 버림받는 일 없도록 화해와 치유의 마음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최재천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기회가 되면 정치인 보좌관 일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거주국에서 인재로 성장한 해외 입양인들과 모국이 연결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어서다.
"아이를 낳게 되면 한국에서 키울 생각입니다. 한국 생활보다 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는데도 신기하게 이곳이 맘 편합니다. 여건만 된다면 평생 한국에서 살려고요." ■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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