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원숭이의 해다. 인간과 많이 닮은 원숭이는 흔히 정이 깊고 재주가 많고 총명한 동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간사하고 재수 없는 동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궁궐이나 사찰 건축, 도자기, 회화, 조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 왔다. 원숭이가 등장하는 신화와 설화,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원숭이의 해는 갑신(甲申), 병신(丙申), 무신(戊申), 경신(庚申), 임신(壬申)의 순서로 12년마다 돌아온다.
십이지지(十二地支)의 아홉 번째 동물로 달로는 음력 7월, 시간으로는 오후 3~5시, 방향은 서남서를 가리킨다. 원숭이가 십이지지의 아홉 번째에 있는 것은 하루 중 이 시간에 가장 많이 우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올해는 청마(靑馬), 청양(靑羊)에 이어 ’붉은 원숭이의 해’로 불린다. 푸르던 동물들이 왜 붉은 빛깔로 바뀐 걸까. 10천간(天干) 중 갑(甲)·을(乙)은 청색, 병(丙)·정(丁)은 적색, 무(戊)·기(己)는 황색, 경(庚)·신(辛)은 백색, 임(壬)·계(癸)는 흑색을 상징한다.
그래서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가 되는 것이다. 각각의 색깔에는 의미가 있는데 청색은 희망과 생기를, 적색은 열정과 활동을, 황색은 믿음과 신뢰를, 백색은 결실을, 흑색은 휴식을 뜻한다. 열정과 활동을 뜻하는 붉은색과 재치와 지혜의 동물인 원숭이가 함께 있는 2016년은 어떤 해가 될까.
◇ 모정과 부부의 애정이 깊은 동물
중국 동진(東晋)의 환온(桓溫)이 촉(蜀)을 치기 위해 창장(長江) 중류의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였다. 부하 하나가 어린 원숭이를 붙잡아 배에 태웠다. 하지만 어미 원숭이는 슬피 울부짖으며 벼랑을 따라 수백 리를 쫓아왔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배에 뛰어올랐지만 어미 원숭이는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아픔을 뜻하는 ’단장’(斷腸)이 유래된 옛이야기다.
이 고사를 인용해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읊었고, 1950년대에 가수 이해연은 한국전쟁이 안겨준 슬픔을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애절한 가락에 담아 부르기도 했다.
원숭이는 이렇듯 자식 사랑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물이다. 동물원이나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는 원숭이가 새끼를 가슴에 품거나 핥아 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경연 서울대공원 연구실장은 "아기 원숭이가 죽으면 어미 원숭이는 마취해 떼어놓을 때까지 아기의 팔을 끌고 다닐 정도로 모성애가 지독하다"고 설명했다.
부부간의 사랑도 깊다. 동물원에서 부부 원숭이 중 암컷이 병이 나 격리했더니 그날부터 수컷이 음식을 먹지 않고 울부짖었고, 암컷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컷도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다.
중국 명나라 때 소설 ’서유기’는 중국 신화와 설화 속의 나쁜 짓을 일삼고 도술을 부리는 원숭이의 이미지를 집약하고 있다.
소설 초반부는 영리하지만 심술부리는 모습을, 후반부는 도술을 터득하는 이미지를 묘사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어중문과 교수는 "손오공은 결국 흔들리기 쉬운 인간의 연약한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는 또 사람들이 원숭이에게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게 했다. 큰 건물의 지붕이나 사찰에 원숭이 상을 세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한반도 설화와 속담에 등장하는 원숭이
한반도에도 원숭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해지고 있다. 충남 부여의 원숭이 못 설화와 강화도 전등사의 원숭이 상이 대표적이다.
부여 원숭이 못 설화는 원숭이를 길(吉)한 동물로 묘사한다. 조선 선조 때 부여에 살고 있던 포수가 어느 날 원숭이를 발견해 화살로 쏘았는데 옆에 새끼 원숭이가 있었다. 그 새끼 원숭이를 데려다 자신의 젖먹이 아기와 키웠는데 하루는 원숭이가 빨래하는 흉내를 낸다며 솥에서 뜨거운 물을 떠다가 아기에게 부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본 원숭이는 돌연 아기를 안고 사라져버렸다. 아기를 찾아다니던 포수는 어느 산골짜기 연못가에서 어린아이와 함께 있는 원숭이 떼를 가까스로 발견했다. 그런데 아기의 데인 상처가 깨끗이 나아 있는 것이었다. 연못의 물은 상처를 치료하는 약수였고, 훗날 이 못은 ’원숭이 못’이라 불렸다고 한다.
반면 전등사 원숭이 상에는 별로 좋지 못한 뜻이 담겼다.
설화에 따르면 대웅전을 중수할 때 목수가 인근 주막의 예쁜 여자에게 푹 빠져 품삯을 맡겼는데 도망을 가버렸다. 목수는 그녀를 벌준다는 의미에서 대웅전 추녀를 받드는 모양의 원숭이 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잔나비 밥 짓듯’ 등이 있는데, 원숭이의 습성을 빗대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 신으로 숭배되지만 재수 없다며 기피되기도
인도에서는 원숭이를 힌두교의 신인 ’하누만’(Hanuman)의 현신으로 여긴다. 하누만은 인도 신화에서 라마(Rama) 신을 섬기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신이다. 하누만은 마왕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라마 신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서 원숭이 상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일본의 사찰과 사당에서는 원숭이 상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일본 닛코(日光)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사당인 도쇼구(東照宮)에는 유명한 원숭이 조각이 있다. 마구간 건물 안 문 위에 원숭이 조각 8개가 있는데 눈을 가리고, 입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는 조각 3개가 가장 유명하다.
불필요한 것은 보거나 듣거나 말하지 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 원숭이 조각을 마구간에 둔 것은 원숭이가 말을 질병으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동양에서 불교를 믿지 않는 지역에서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하기도 했는데, 꾀와 재주가 많고 총명하지만 간사스럽게 흉내를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얼굴이 원숭이 상(相)인 사람을 재수 없어 했고, 원숭이 이야기를 아침에 하는 것도 금기시했다고 한다. ’민첩한 원숭이’라는 뜻의 ’잔나비’에도 조금은 이런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 벽사에 이용되고 풍요와 출세 상징
한반도에는 없는 원숭이가 우리의 유적과 유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원숭이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삼국유사’다. 법흥왕 14년(527년)에 이차돈이 불법을 위해 몸을 바쳤는데, 그의 목을 베자 ’샘물이 갑자기 말라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어오르고, 곧은 나무가 부러지니 원숭이들이 떼 지어 울었다’란 기록이 있다.
또 장난감, 주술적인 우상, 부장품으로 이용된 신라의 토우에도 원숭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평양 상원군 검은모루동굴, 충북 청원 두루봉과 단양 구낭굴 등 선사시대 유적에서 원숭이 뼈 화석이 발견되는데 이는 한반도에도 원숭이가 일정 기간 서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숭이는 십이지지 중 하나로 불교 조각과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 특히 통일신라부터는 무덤을 두른 호석, 부도, 석관에 원숭이 상이나 조각이 나타난다.
호석의 원숭이 상은 경주 괘릉(掛陵)이나 김유신묘가 최초로 추정된다. 원숭이 모습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은 성덕왕릉의 조각상으로 알려졌다. 이 원숭이는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긴 칼을 잡고 왼손은 허리춤을 쥐고 있다. 또 어깨에는 귀면(鬼面)이 새겨져 있다.
원숭이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도 등장한다. 고려청자를 보면 원숭이 형상으로 제작한 도장의 꼭지, 항아리,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껴안고 있는 모습의 연적을 볼 수 있다.
특히 청화백자와 백자에는 원숭이가 포도 넝쿨 사이를 다니거나 따먹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는 모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의 궁궐에서도 원숭이를 볼 수 있다. 원숭이는 경복궁 근정전·근정문·경회루, 창덕궁 인정문과 돈화문, 덕수궁 중화전, 종묘 정전의 지붕에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잡상(雜像) 중에 있다.
잡상은 흔히 대당사부(大唐師傅·삼장법사), 손행자(孫行者·손오공), 저팔계 순으로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맨 앞의 상이 갑옷을 입고 있고 궁궐에 승려가 있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 손오공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원숭이는 그림의 소재로도 활용됐다. 장수를 상징하는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거나 ’서유기’에서처럼 스님을 보좌하고 있는 그림이 많다.
조선 말기 화가 장승업은 장수, 성공, 부귀 따위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산수영모(山水翎毛) 10첩 병풍’에 원숭이를 그렸고, ’송하고승도’(松下高僧圖)에는 소나무 줄기에 걸터앉은 노승에게 불경을 바치는 원숭이를 담았다.
조선 후기의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에는 원숭이가 나뭇가지로 게를 잡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 원숭이의 해에는 통일과 건국의 역사가
원숭이의 해에는 어떤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통일과 건국의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에서는 36년 후한의 초대 황제 광무제(光武帝)가 각지의 할거 세력을 평정해 통일하고, 1368년에는 주원장이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고 명나라를 건국했다.
이에 앞서 156년에 선비족은 몽골을 통일했다. 또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의 항복을 받아 후삼국을 하나의 국가로 만들었고 1392년엔 조선이 건국했다. 1776년 7월 4일에는 미국이 독립선언문을 작성, 공포하고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근대 원숭이의 해에 우리나라에는 일이 많았다. 1884년에는 개화파가 조선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1896년에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런 열강에 의한 국권 침탈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정부의 외세 의존 정책에 반대하며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제1회 하계 올림픽이 개최됐다.
올해는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는 4월 13일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고, 8월 5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남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올림픽이 개최돼 지구촌을 뜨겁게 달굴 예정이다.
또 11월 8일에는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5월 9일에는 수성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정확히 위치해 일직선이 되는 ’수성 일면통과’가 발생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다.
원숭이의 해에 태어난 우리나라 위인으로는 강감찬 장군, 이율곡과 송강 정철, 정조,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 화가 나혜석, 소설가 김유정·이무영, 윤봉길 의사가 있다.
또 외국 위인에는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화가 고갱과 모딜리아니, 철학자 데카르트·로크·스피노자·쇼펜하우어·러셀, 소설가 찰스 디킨스·알렉상드르 뒤마·안톤 체호프·스콧 피츠제럴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등이 있다. ■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