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국가의 출산보건 정책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에서 사회 시스템의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조망하고 있다. 책을 낸 김영사 측은 "학계 최초의 저출산 대처 융합 프로젝트"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영사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0.98명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했지만 ‘인구 쇼크’ ‘인구 절벽’ 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합계출산율 ‘1’이 무너진 진짜 이유는 뭘까.
  
진화학·인구학·심리학·동물학 등을 연구한 일곱 명의 학자가 제시한 저출산 원인과 대책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김영사의 신간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의 저자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진화학), 장구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동물학),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심리학),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임상심리학),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빅데이터),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역사학)이다.
   
이 책은 국가의 출산보건 정책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에서 사회 시스템의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조망하고 있다. 책을 낸 김영사 측은 "학계 최초의 저출산 대처 융합 프로젝트"라고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사진=김영사
  
그렇다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저출산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일까.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모든 생명체의 진화적 목표는 생존과 재생산(번식)"이라고 했다. 그는 “그중 어느 쪽에 에너지를 더 많이 쓸 것인가는 개체가 환경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주변 환경이 실제로 경쟁적이거나 그렇다고 지각하는 경우, 우리는 번식을 늦추고 아이를 적게 갖으려 한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는 자손의 번영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주지하듯이 한국 사회는 경쟁적이다. 따라서 저출산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 적응하는 인간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즉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간의 저출산 대책은 이처럼 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 없이 청년들의 복지 확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장 교수는 “경쟁에 대한 심리적 밀도를 줄여야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다"고 했다.
  
장구 서울대 교수는 “인간의 경우 주로 사회문화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로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지만 동물의 범주에서 저출산은 주로 생물학적인 문제로 인해 나타난다"면서 “서식지가 파괴되거나 성별로 격리해 사육하면 자연스러운 번식이 가로막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환경호르몬에 의한 생식기관의 이상으로 불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도 유사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며 “아직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이고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로 인한 대사성 변화(비만)는 난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사회문화적, 경제적 요인에 가려져 있는 생물학적인 요인이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으로 대두될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심리학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인간의 강력한 본성인 출산행위를 북돋우거나 억누르는 우리 마음의 작동 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서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자연적 운명을 거슬러 저출산 현상을 낳은 인간이지만 행동 판단의 근거는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비합리적 감정이다. 긴 진화의 여정에서 정확하지만 느린 이성보다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신속한 감정이 자연 상태에서 생존을 위한 행동 판단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불안과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목전의 사안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반면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생을 설계하게 한다"면서 “행복해야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 행복한 사회는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허지원 중앙대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허 교수에 따르면, 자잘한 좌절의 경험이 축적되면 오히려 역경을 감내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생긴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은 그러한 경험이 박탈당해왔고 ‘N포세대’ 같은 말이 방증하듯 이전에 비해 스트레스는 한층 거대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소진된 채 우울, 감정표현 불능증, 무(無)쾌감증, 불안정 애착 등 부정적 심리에 빠져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낯설고 새로운 과제를 수행할 감정적 에너지가 축소된 상태다.
 
허 교수는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좋은 부모’를 목표로 해 마음의 부담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또 “비혼·비출산의 심리학적 기제의 경우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느슨한 형태의 가족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물론 출산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위한 제도라는 점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 또한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성 평등 의식이 고양되면서 가정 내 남성과 여성의 위상에 변화가 생겼고 1인 가구가 크게 늘어났다"며 “더 이상 기존의 ‘정상가족’을 강요할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 생성되었다"고 했다.
 
송 부사장은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키워드 1위가 ‘독박육아’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며 “국가나 사회의 규범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이미 생애주기별 삶의 전형이 더 이상 공고하지 않다. 이제 집단이 개인으로 분화된 사회가 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출산은 엄밀히 따져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집합적인 숫자와 통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아이를 키울 때 느끼는 무게를 줄여주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송 부사장은 강조했다.
 
역사학자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면서도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 정부 정책 방향이 바뀌기까지 30여 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른 것이 우리나라의 특징"이라고 했다.
 
주 교수에 따르면,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사례처럼 사회 안전망이 붕괴돼 나타난 병리적인 현상으로서 인구 감소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찍이 인구 감소 현상에 적응한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결혼과 비혼·미혼의 중간 상태인 ‘동거(코아비타시옹)’를 제도적으로 인정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인 바 있다. 주 교수는 “새로운 제도와 관습, 도덕이 형성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유연히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인구학자의 시선을 이 문제를 바라봤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은 사회구조적인 논의로 치우쳐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130조원의 예산을 들여 보육 환경이나 일자리, 주거 문제를 개선하려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저출산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산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출산 과정을 분석한 맬서스의 인구론과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분석한 다윈의 진화론을 접목하면 생물학·심리학·인구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 출산의 근본 원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쟁적 환경에서 느껴지는 물리적 밀도와 그로 인한 심리적 밀도에 따라 인구 조절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밀도를 낮추려는 정책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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