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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과 유엔연합군은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했다. 그러나 당시 유엔군은 38선을 지나 북진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해 9월 30일 국군이 38선에 도달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북진을 전격 명령한다. 마침내 10월 1일을 기점으로 당시 육군 3사단 23연대 3대대가 38선을 돌파해 북진했다. |
올해 10월 1일은 건군 70주년을 맞는 ‘국군의 날’이다. 하지만 거리행진도 없고 행사 자체도 축소됐다. 현 정부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국군의 날’ 행사를 준비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군의 날’이 ‘홀대’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추세는 작년에 예견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30여명은 작년 9월 국군의 날을 현행 10월 1일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할 것을 촉구하며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30여명은 작년 9월 국군의 날을 현행 10월 1일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할 것을 촉구하며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다.
당시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 정부는 제헌헌법과 87년 개정헌법에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명문화하고 있어 우리 군의 모체는 광복군이라 할 수 있다"면서 “현행 10월1일 국군의 날은 1956년에 제정한 것으로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육군의 38선 돌파를 기념하는 의미로 정해졌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국군의 역사적 뿌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 발의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권 의원 외에 강훈식, 권미혁, 김경협, 김두관, 김병관, 김병욱, 김종민, 김철민, 노웅래, 문희상, 민병두, 박광온, 박재호, 박주민, 박홍근, 백재현, 설훈, 소병훈, 송기헌, 신경민, 신창현, 안민석, 어기구, 유동수, 이용득, 이철희, 이해찬, 임종성, 제윤경, 조승래, 홍의락 민주당 의원과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 등이었다.
그 무렵 한국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10월 1일에서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 발의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권 의원 외에 강훈식, 권미혁, 김경협, 김두관, 김병관, 김병욱, 김종민, 김철민, 노웅래, 문희상, 민병두, 박광온, 박재호, 박주민, 박홍근, 백재현, 설훈, 소병훈, 송기헌, 신경민, 신창현, 안민석, 어기구, 유동수, 이용득, 이철희, 이해찬, 임종성, 제윤경, 조승래, 홍의락 민주당 의원과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 등이었다.
그 무렵 한국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10월 1일에서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국방부 업무 보고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1940년 창설된 광복군을 우리 군의 시초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정통성이 없는 10월 1일이 과연 국군의 날로 적합한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가령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우리 군의 역사적인 출발점으로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고 변경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기사가 보도된 후 야당과 언론이 이를 문제 삼자 청와대는 "대통령이 '검토해 보라'고 확정적으로 지시한 적 없다"고 해명했었다.
10월 1일은 어떤 과정을 통해 ‘국군의 날’이 됐을까. 6·25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한 후, 그해 9월 국군과 유엔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 성공한다. 마침내 그해 9월 28일 서울도 수복했다. 그런데 당시 유엔군은 38선을 지나 북진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해 9월 30일 국군이 38선에 도달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북진(北進)을 전격 명령했다. 마침내 10월 1일을 기점으로 당시 육군 3사단 23연대 3대대가 38선을 돌파해 북진했다. 이날을 기려 국군의 날이 지정된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한 후, 그해 9월 국군과 유엔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 성공한다. 마침내 그해 9월 28일 서울도 수복했다. 그런데 당시 유엔군은 38선을 지나 북진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해 9월 30일 국군이 38선에 도달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북진(北進)을 전격 명령했다. 마침내 10월 1일을 기점으로 당시 육군 3사단 23연대 3대대가 38선을 돌파해 북진했다. 이날을 기려 국군의 날이 지정된 것이다.
사진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정일권 참모총장. |
국군의 날은 1956년 7월 21일 지정됐고 1973년부터 법정기념일이 됐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은 한국군이 기습적으로 남침한 북한 공산군을 반격한 끝에 38선을 돌파한 날로, 그 의의를 살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연합군이 38선 이북으로의 진군을 주저하자 친필(親筆)을 써가며 국군에 38선을 돌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국군의 날에 대해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고위 인사들이 '정통성이 없다' '국군의 날로 적합한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한다'고 말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로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국군의 날’에 대한 현 정부 주요 인사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건군 70주년인 올해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계기로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 어둠이 내일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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