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키웁니다. 병원 갈 일이 아예 없도록 하는 거죠."
주부 임지홍(35) 씨는 요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탓에 생후 14개월 된 첫딸에게 평소보다 몇배의 정성을 들인다.
’급하게 먹으면 체할까’, ’잠시라도 한눈팔면 넘어져 다칠까’, ’찬바람 맞으면 감기 걸릴까’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메르스 탓에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당분간 병원에 갈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게 목표다.
사람이 태어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여럿 있는데 신생아 때부터 12세가 될 때까지 거치는 ’필수 예방접종’이 그 가운데 하나다.
생후 1개월 이내에 맞게 돼 있는 B형 간염과 결핵 예방 백신인 BCG를 시작으로 12년 동안 30번이 넘는 예방접종을 해야 ’건강한 사람’이 된다.
이 때문에 요즘 예방접종을 앞둔 부모들의 마음이 무겁다.
임씨는 "예방 접종일이 점점 다가오는 데 안 좋은 소식만 계속 들린다"며 "하루빨리 메르스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생 이후 병원에서 주는 ’아기 수첩’에는 접종시기, 접종예정일, 백신의 종류 등이 적혀 있다.
접종 이후 병원에서 확인 도장도 받는다.
메르스 이전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것은 부모들의 보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걱정 그 자체가 됐다.
산부인과와 소아과 진료를 함께하는 부산시 수영구 한 여성병원에는 최근 들어 예방접종을 연기하는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평소라면 아이를 업거나 유모차에 태운 엄마들로 북적이는 게 정상인데 그런 발길이 뚝 끊겼다.
이 병원은 예방접종을 앞둔 아이의 보호자 중 30% 이상이 진료를 연기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일부 엄마들은 BCG 접종처럼 ’필수 중의 필수’ 백신을 맞히려고 사람이 가장 적은 시간에 최소한의 동선을 선택해 예방접종을 한다.
BCG는 생후 1개월 이내에 맞게 돼 있다.
만약 이 시기를 놓쳐 어릴 때 결핵에 걸리면 제대로 백신을 접종한 경우와 비교해 성장과정에서 신체에 발생하는 이상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울산시에 사는 김지영(34·여) 씨는 그런 이유로 지난 6월 11일 병원이 한산한 점심 직전에 예방접종을 했다.
김씨 품에 안겨 예방접종을 한 둘째 딸은 당시 생후 3주차에 불과했다.
김씨는 "출산 후 산부인과의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집으로 바로 왔기 때문에 병원 내에서 바로 접종할 수 없었다"며 "메르스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권장 접종일’에 정해진 백신을 접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본다.
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감염클리닉 박수은 교수는 "최적의 면역반응과 최적의 접종 효과를 얻으려고 접종연령과 백신의 종류가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장 접종 연령과 접종 간격은 그 백신의 면역반응을 최대로 얻으면서 그 질환을 최대로 예방할 수 있게 정해져 있는 스케줄"이라며 "너무 일찍 접종하거나 너무 늦게 하는 경우 백신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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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