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메르스 치료 의료진이 통제구역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인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눈에 보이는 피해뿐 아니라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메르스와 싸우는 의료진은 지역 사회의 불안한 시선과 마주하며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 자가 격리자들도 이웃의 눈치를 보고 후유증에 대한 불안감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일반인 역시 일상적인 ’메르스 공포’ 속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전문가들은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부의 빠른 대응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메르스 옮을라"…의료진은 친구·이웃에 ’은근한 따돌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순천향대병원에서 근무하는 A(26·여)씨는 요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이 곧잘 취소되곤 한다.

A씨는 "다들 바빠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메르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얼마 전 대학 친구로부터 간호사로 일하는 친구를 만나려 했다가 동료들이 만류해 약속을 미뤘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내과를 운영 중인 B씨는 "요즘 의사지만 환자를 보는 것도 무섭고, 그렇다고 환자를 거부할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라며 속내를 털어놨다.

웬만한 모임은 될 수 있으면 안 나가려 한다는 B씨는 최근 중요한 모임이지만 취소한 경우도 몇 번이나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적이 없다는 B씨는 "환자를 만날 때마다 ’이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 오늘 만났던 사람들은 전부 격리돼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온종일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병원을 지킨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로 환자가 줄면서 병원 운영을 걱정하는 의사도 많아졌다. 이 때문에 잠시 병원 문을 닫을 것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메르스 병원’으로 오해될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B씨는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메르스 2차 유행의 진원지로 지목된 삼성서울병원 직원들의 고충은 더 크다.

동네에서 주민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은따)을 당하기도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도 조심스럽다는 게 이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서울병원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이 병원에서 일하는 가족이 있는 학생을 조사해 일일이 전화로 특이상황을 체크했다. 응급실 등 메르스 위험도가 높은 부서에서 근무한 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 꼼꼼히 조사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거나 우려되면 학교에서 연락할 때까지 등교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간호사인 어머니를 둔 아이가 격리대상이었다가 최종적으로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아직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때가 때이니만큼 다른 아이 부모들이 싫어할까 봐 등교를 꺼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이를 어쩌지 못해 난감해한다"고 전했다.

◇ 자가격리자 후유증 우려…일반인도 상시 ’스트레스’
자가격리자들 역시 ’낙인’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사망한 76번 확진자가 있었던 건국대병원 응급실에 들렀다가 자가격리된 임신부 A(34·여)씨는 격리 스트레스로 최근 출혈 등 유산위험 징후를 보였다.

보건당국은 A씨에게 메르스 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안내했지만, 병원 내 감염을 우려한 A씨는 자가격리가 끝날 때까지 가족의 도움을 받아 절대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항바이러스제 등을 투여하기 어려운 임신 8주차인 A씨에게 메르스 감염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A씨 가족은 자가격리가 해제돼도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A씨는 "이번 주 일요일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대로 병원에 가려는데, 접촉 후 14일이 넘어서도 발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 진료를 거부당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된다"며 불안해했다.

만약 의료기관이 자신의 진료를 거부하면 A씨는 병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평범한 일반인 역시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토로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이나 식당·커피숍 등 공공장소에서 기침 소리라도 나면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부는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이제는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문효숙(59·여)씨는 "평소 기관지가 약해 기침을 자주 하는데, 요즘은 눈치가 보여서 어디 가서 기침 한 번 시원하게 못 한다"면서 "매일 메르스 사망자가 늘었다는 뉴스가 문자로 오는데 깜짝깜짝 놀라고, 불안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 "따돌림 등은 사회적 폭력…성숙한 시민의식 필요"
전문가들은 치료제도 없고 치사율이 높다고 알려진 메르스 앞에 공포를 느끼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감염 확률이 몇 %인지를 떠나, 감염되면 나와 가족이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인간이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도 "메르스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사망자 숫자를 보면 다른 질병과 비교해 결코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기존의 의학 시스템이나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더 혼란에 빠지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메르스에 대한 공포로 의료진과 격리자 등 사회구성원에 대해 심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려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헌신한 의료진은 주위로부터 병을 옮기지는 않을까 낙인찍혀 눈총을 받고, 격리대상자들은 가족과 차단돼 혼자서 고독하게 어려움을 견뎌내야 해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가격리자에 대한 심리 상담이 처음부터 격리와 함께 진행됐어야 했다"며 "이들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성숙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컨트롤타워인 정부의 적확한 대응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포와 불안도 전염된다"며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면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이때 정확한 정보를 빨리 주지 못하면 괴담이 생겨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괴담이 확산해 불안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따라서 정부는 발 빠른 대처로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개인은 각종 정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확실한 정보를 걸러내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백 교수도 "리더십이 적절하게 발휘되지 못한 것도 불안을 부추긴 요인"이라며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 단기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고 이번 계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시사점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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